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지 Jul 13. 2024

시민의식과 선악은 동일어인가?

시민의식은 선에 속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악은 시민의식과 다름없을까?

은행에서 업무 볼 일이 있어서 오늘 오전 일찍 은행에 다녀왔다. 9시 맞춰서 들어갔는데도 내 대기번호는 8번이었고 10분 내로 빠질 거라 생각해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모니터에 8번 알림이 뜨고 지정된 창구로 가려고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어느 할머니가 잽싸게 달려가 의자에 앉아계셨다. 당황한 나는 "엇 저 8번인데요.."라고 나지막이 더듬거렸고 할머니는 알림이 떴을 때 오지 않았으니 순서가 지나간 것이라며 되려 큰 소리를 내셨다. 은행원님께서는 할머니 업무 먼저 해드리고 내 걸 해주신다 하셨고, 나는 민망한건지 자기합리화인지 모를 할머니의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소리를 들으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럼 할머니는 악한 사람인가?

확실한 건 내가 본 몇분 사이의 할머니의 모습은 그닥 유쾌하진 않았다. 시장 안에 위치한 은행인걸 감안해서 젊은 사람은 나 뿐이었고 그런 점이 할머니에게는 새치기를 마음 편히 할 유인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가 속히 말하는 나쁜 사람, 안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사실 각 개인이 생각하는 시민의식의 정도도 모두 다르다. 누구에게 시민의식은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정도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한층 더 고차원적인 자세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선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고, 환경운동가라고 해서 그 누구보다 우월하게 선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따뜻해서 베풀기 좋아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전형적인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여도 시민의식이 높을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기초수급자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내어주는 마음씨 좋은 식당 주인이 남몰래 가게 뒤 골목 하수구에 기름을 버리기도 하듯이 말이다.

그럼 우리는 이 식당 주인이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된다. 배가 고픈 아이들에게 측은지심을 느껴 올때마다 대가없이 음식을 내어주는 사장님의 마음은 선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름 처리하기 복잡하다는 이유로 몰래 하수구에 기름을 버려 하수구가 막히게 하는 건 도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래서 시민의식과 선악은 동일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우리는 보통 긍정적인 자세의 사람들에게 선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 부모님에게 잘하는 사람, 잘 베푸는 사람, 심지어는 길가에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까지도 말이다. 시민의식과 선악에 대한 구분 없이 큰 틀로 바라보다보니 작은 행동 하나에 쉽게 선악을 결정짓게 되고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실제로 모든 사람들의 본질은 선하고 순수하다고 믿는다.

시민의식의 부재는 선하지 않음이 아닌 인지하지 못한 것일 뿐

나의 자세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기를

노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사는 내가 새겨둘 것

이전 02화 필름카메라와 플래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