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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지 Jun 29. 2024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들

자기객관화와 사랑의 정의란



1. 자기객관화의 모순


예전에는 자기 자신을 믿는 힘이라는 명목으로 무한한 긍정적임과 자신감이 높은 자존감으로 여겨지다가, 요즘은 또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게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요근래 자기객관화와 자기검열은 한끗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조차도 내 성격의 장단점을 나열할 때면 자기객관화가 잘되어있다는 좋은 말로 포장해서 단점은 서스럼없이 말하지만 장점은 쑥스러워하며 말하게 된다. '나는 자기객관화가 잘되어 있는 사람이야!'라고 생각이 들 때는 보통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내 단점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게 자기검열로 변질되어 자기혐오로 나아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나의 자기객관화는 덤벙대고 똑부러지지 못하고 잘 깜빡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고치고 싶은 나의 모습이지만 '이게 내 모습인 걸 어떡해!'라고 인정하고 보완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다 대학원에 들어오게 되고 보통 대학원은 배움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나 각 분야에서 뜻이 확고한 사람들이 들어오기에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내 모습은 가히 대조적이었다. 처음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동경했고 나중엔 그렇지 못한 나의 모습을 비교하게 됐다. 이곳에 속하기엔 내가 너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단점을 마주한 자기객관화가 자기혐오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자기혐오..라고 하기에는 거창한 면이 있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부끄러워한다는 점이 자기혐오의 범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자신의 단점을 마주하지 못하는 사람을 겁쟁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물론 자신의 단점 앞에서 당당한 것은 그자체로 박수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의 장점 또한 자기객관화를 통해 바라보는 게 정말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보통 본인의 장점을 말할 때는 대부분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장점을 말하지 않나요? 지금 떠오르는 나의 장점은 다정하다는 것과 말을 예쁘게 한다는 점인데 이건 내가 내 자신을 바라봤을 때의 장점이 아니라 가장 많이 들어본 칭찬에 의한 대답인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과 친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일상 속에서 틈을 내어 본인을 긍정적 객관화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 사랑은 책임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서로를 알아가고 친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나는 '사랑은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많이 해왔다. 이 질문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파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고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관찰하는 주제이기도 했다. 좋아함과 사랑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는 두 단어 사이의 그 미묘함을 구별해내고 싶었다. 나한테 사랑은 숭고한 감정이라서 '나쁘지 않네~ 한번 만나볼까?'의 그럭저럭 괜찮다의 감정이나 특정 대상이 아닌 애인이 필요해서, 즉 연애가 주는 도파민이 필요해서 시작하는 마음은 사랑이라고 여기고 싶지 않다. 당연히 그렇게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사랑이 주는 깊이가 나랑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고 호감을 사랑으로 키워가기까지 많은 숙고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일단 만나보고 아님 말고..는 나랑 안맞는다는 거다.

그래서 사랑이 뭘까에 대한 정의가 손쉽게 내려졌다. 사랑은 책임감이다. 나는 '사랑해'라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상대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거다. 쉽게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고 내일모레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건 비겁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해'는 좀 더 무거워야 한다. 그렇다고 사랑표현을 아껴야한다는 게 아니라 그 말에 적합한 사람에게 해야한다는 거다. 사랑하지도 않는 그저 도파민을 위한 상대에게 사랑해를 내뱉는 건 나랑 안맞다.

처음엔 사랑한다는 게 희생인 줄 알았고 나중엔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이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자는 자기파괴적이고 후자 또한 건강하지 못하다. 그러면서 내가 있으면서 상대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 그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건 책임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흔히 부모님은 당신들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자식이 본인을 책임져 달라고 하지 않아도 자식을 위해 돈을 벌고 아프면 반차를 써서 병원에 데려가고,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공부를 시킨다.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훈계도 하고 폭넓은 시야를 길러주기 위해 여행을 데리고 다닌다. 이 중에서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파생되는 책임감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은 좀더 고차원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연인과 친구 간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심해하고 있을 친구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좋아하는 간식을 선물해준다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자며 불러내는 것 또한 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책임감이다. 여기서의 책임감은 아무도 강요한 적 없이 자발적인데,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을 친구의 슬픔을 경감시켜주고 싶다는 책임감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연인도 그렇다. 회사 계약 연장이 안된 연인에게 본인이 더 노력해서 먹여살리겠다며 결혼하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야 말로 책임감이며 사랑에 의해서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계약 연장 불발로 낙심한 상대의 마음을 북돋아주고싶고 먹고살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내가 궂은 일을 도맡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거다.

위의 예시에 있는 관계에서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 비효율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책임감이 사랑이라고 느껴진다.

번외로, 그래서 서로의 외모와 조건으로 만날지 말지를 단기간 안에 평가하게 되는 소개팅이나 길거리 헌팅에 반감이 가나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고 나면 소개팅이 아니면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고들 한다. 근데 우선 몇시간의 대화로 상대의 가치관과 성향을 파악해 사랑할만한 사람일지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애초에 나라는 다채로운 사람을 몇번의 만남 안에 전부 보여주기도 어렵다.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게 아니라 관찰자나 면접자의 입장에서 머리 굴리는 건 나랑 안맞다. 다른 사람들의 소개팅이 이상하다는 게 아니고 내가 느린 사람이라 그저 이 과정이 안맞다는 거다. 혹자는 '그러다가 쭉 연애 못하면 어떡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연애를 위한 사랑은 나랑 안어울리기도 하고 꼭.. 연애가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것이 내 결론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혼자가 좋다.


아무튼 모두들 사랑은 책임감이라는 거에 동의하시나요? 열마디의 사랑해와 값비싼 선물보다 묵묵한 책임감에서 사랑을 느껴요. 모두들 곁에 있는 사람의 당연하지 않은 책임감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보아요. 내 곁에 있어준다는 것 자체가 당연함이 되어서도 안되고 존재해준다는 것이 큰 책임감이랍니다! 익숙함을 무기삼아 상대방의 책임감을 무시하지 말도록 해요.

모두 같이 사고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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