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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지 Aug 10. 2024

우리가 외로운 이유

외로움보다는 외로울 것에 대한 두려움


인간은 평생 외로운 존재다. 따라서 외로움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구를 통해서 채울 수 없다.

너무 익숙한 말이면서도 나 스스로 외로움을 채운다는 게 뜬구름 잡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외로워서 힘든 걸까? 보통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현재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 반, 아직 오지도 않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반이다. 지금 당장 소통할 사람이 없고 마음 둘 곳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래에 혼자 남겨질 자신의 모습이 두려워 친구든 연인이든 서둘러 관계를 맺으려 하는 외로움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도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하 지금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면 3년간 홀로 보내야 할 것에 대한 불안함, 서른 중반이 넘어가면서 주변 친구들은 모두 결혼하고 나만 가정을 꾸리지 못해 혼자 남겨질 것 같다는 초조함, 나이가 들어 배우자와 사별하고 따로 남겨질 것에 대한 공포감. 이처럼 지금 당장의 외로움은 차하고서라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외로움에 대해 평생을 두려워한다.



그럼 왜 아직 오지도 않은 외로움에 겁을 낼까 생각해 보면 그만큼 우리에게 외로움이 크게 부정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외로움을 경험해 봤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외로운 감정보다는 외로움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공포심이 더 강한 거다.



나는 외로움은 주체성의 부재로 봤다. 나 홀로 설 수 있는 힘이 없기에 외로운 거다. 물론 외로움이라는 건 정형화된 감정이 아니기에 이렇다고 규정할 정확한 지침은 없다. 그래서 각자가 느끼고 있을 외로움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나누지 않고 광범위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의 외로움을 말하는 거다.

외로움이라는 건 오히려 외로워보지 못했기에 느끼는 감정이다. 혼자 있는 것, 그리고 혼자 있게 되는 걸 두려워한다는 건 혼자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고 그 자체로 주체성의 상실을 나타낸다. 내가 외로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외로워도 외롭다고 느끼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인간은 타인과 떨어져서 살 수 없고 집단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필수적이기에 우리는 단체 생활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절대 혼자였던 적이 없다. 학교에 가면 옆자리에 짝꿍이 있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직장 동료든 거래처는 어떻게든 항상 누군가와 함께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나면 다음 날이 될 때까지의 나는 혼자인 거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내가 주체적으로 채워야 하는 시간들이고 더 나아가 주말 이틀은 말할 것도 없다.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우며 휴식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가장 익숙하고 쉬운 수단을 선택한다. 친구를 만나서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수다를 떨고 맛있는 걸 먹고 영화를 본다. 어쩌면 우리는 한 번도 외로워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당장 이번주, 또는 앞으로 장장 몇 년 간 홀로 남겨지게 될 약속이 없는 이틀의 주말이 두려운 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취향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도 나를 잘 알지 못하는데 타인을 통해 빈 감정을 채우려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고 이상적인 일체감만 좇다 보면 괴리의 간극만 깊어지게 된다.




만약 내게 일주일간 홀로 보낼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외로울 수 있는 사람인가?



내 취향과 선호를 알아가며 진정 외로워보는 것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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