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에서 질경이는 지천에 널린 식물이었다. 손을 뻗치면 그대로 닿을 만큼 흔했고, 밭두렁에라도 자리 잡으면 금세 번식해 농사에 방해를 주니 늘 뽑아내야 하는 골칫거리였다. 나에게 질경이는 ‘없어져야 할 것’, ‘쓸모없는 잡초’라는 이미지가 전부였다.
그런 질경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은 훨씬 시간이 흐른 뒤였다. 시어머니와 한참을 함께 지내던 시절, 어머니는 산책을 하다 질경이를 보기만 해도 반가워하며 젊은 날 나물로 무쳐 먹던 이야기를 꺼내곤 하셨다. 어머니에게 질경이는 먹고 살기 바쁘던 시절을 붙들어 주던 식재료였고, 잊을 수 없는 생의 맛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 나는 질경이를 단순한 ‘잡초’로만 볼 수 없었다.
집 근처 산책로 옆 냇물가 경사면에는 질경이가 촘촘히 밭을 이루고 있다. 흙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뿌리로 경사를 붙잡고 있어, 안내문에는 ‘캐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다. 예전에는 밭을 망치는 존재라며 미움을 받던 식물이, 지금은 흙을 지키고 냇물을 지키는 든든한 생태의 일원이 되어 있다.
질경이에 대한 나의 오래된 인식도 그렇게 바뀌었다. 쓸모없다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자리를 지키고 누군가를 돕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처음부터 쓸모 없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아직 자신의 쓰임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자리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질경이를 다시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작아 보이는 존재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소중한 맛이 되고, 어느 자리에서는 흙을 붙잡아주는 힘이 되며, 또 다른 곳에서는 계절을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의 쓰임을 포기하지 않고, 삶 속에서 그것을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 질경이가 밭두렁에서 냇물가로 자리를 옮기며 본연의 역할을 하듯, 우리 또한 어느 순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연스레 서게 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남의 기준으로 ‘쓸모’를 판단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으로 자기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