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이하 줄여서 문창과)에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실기로 합격하거나 백일장 수상으로 문학특기자 전형에 합격하는 것이다. 교내 백일장은 안 된다. 각 학교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어느 곳에서 하는 어느 것까지 인정하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산청소년문학상이 있다. 캠프도 있고 수상작 출판도 되어서 거의 밤을 새울 정도로 사활을 거는 학생들도 있다. 이 백일장만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 말라. 대부분은 하루 만에 끝난다.
고2 4분기에 문창과 실기 글을 처음 써봤다. 고1, 심하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쓴 애들도 있다고 했다. 책 읽으려고 자퇴했다는 아이도 봤으니. 그때 심장이 얼마나 쫄렸겠는가. 예중, 예고에도 문창과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남들은 고1부터 나가는데, 고3 되어서야 첫 백일장을 나갔다. 아직도 그날 무슨 옷 입고 갔었는지까지 기억난다. 만해백일장이었는데, 일등상을 놓고 거의 오백 대 일로 경쟁했다. 엄마는 놀려고 참가하는 애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나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참, 상의 개수도 중요하지만, 몇 등인지도 중요하다. 장려상만 있으면 솔직히 합격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여튼 그때는 점심밥이 안 넘어갈 정도로 긴장했다. "오늘 못 받으면 난 끝장이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상식 진행자는 마이크에 대고 "오늘 못 받을지언정, 박수를 크게 쳐주면 내년에는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아니지. 두 손 모아 기대하는 부모님의 모습도 상상이 되었다.
수도권에 살고 있다면 지방 백일장은 웬만하면 말리고 싶은 게, 빈손으로 서너 시간을 고속도로 타고 올라올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보라. 삼십 도가 넘는 더위에도 전국 각지로 쏘다녔는데, 고3 여름방학 때까지 상이 없었다. "이번엔 여자애들끼리만 경쟁하는 거라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것은 경쟁률 십 대 일이던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했지만 다 떨어졌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체육복 고무줄 바지가 흘러내려 골반에 걸칠 정도로 살이 많이 쪘다. 체중도 안 쟀다. 지금보다 15kg 이상 더 나가지 않았을까.
건국대 백일장에는 예심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통과가 되었다. 전원이 착석하자 갑자기 상장을 하나씩 주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시험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 전원이 예심 통과를 한 것이니 그에 합당한 상을 드린 겁니다."라고. 여름에 다섯 시간 정도 물 없이 걷다가 얼음물 한 잔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아직도 감사드린다.
결국 필자는 문학특기자 접수는 아예 하지도 못했고, 먼 훗날 실기로 합격하게 된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그래도 너무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창과에 못 간다고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성인이 수십, 수천만 명인데 다들 어떻게든 해서 살아진다. 경쟁률이 오백 대 일이면 사백구십구 명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