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해라!
저번에 문장력에서 프로를 구별할 수 있다고 썼다. 오늘은 '진부함'에 대해 말할 것이다. 상대적인 기준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은 길에서 같은 종을 보고도 그냥 지나쳐 갈 것이다. 아는 척을 할 수야 있겠지만,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태어나서 처음 본 사십 개월 아기라면? 신기해하며 한번이라도 쓰다듬어 보려고 할 것이다. 파리 지하철은 백 년이 넘은 것을 고스란히 쓰고 있다. 심지어 창문을 다 열고 달려서 터널의 먼지를 다 마셨다. 프랑스인이 한국에 처음 와서 지하철에 에어컨이 나오는 것을 알고 신기해하며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역으로 필자는 일반적인 메종(가정집)이 아닌 오스만 양식 하녀방에서는 저번에 처음 자 봤는데, 한복을 처음 입어보는 외국인처럼 신기해했다.
지금 쓰려는 글의 소재가 얼마나 많이 봐온 것인지, 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반복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 수백 번은 더 재생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동화 '신데렐라'와 '콩쥐팥쥐'는 사실상 소스와 하고자 하는 말이 비슷하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 다른 사람은 못 쓰는 방식으로 쓰면 된다.
미대생들 앞에서 누드모델을 하는 알바가 있다. 옷을 다 벗고 미동 없이 자세를 취하면, 보고 따라 그린다.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현장이라고 들었다. 아무래도 조각상이나 사물은 평면적이고 한계가 있으니 실감 나게 그리기 위해 사람을 고용해 쓰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 앉은 학생과 뒤에 앉은 학생의 그림이 과연 같을까? 정면을 보고 앉은 학생과 대각선으로 앉은 학생의 그림은? 그럼 같은 위치에 짝꿍으로 앉았다고 하면? 그리기에 불리한 사각지대거나 모델이 잘 보이지 않으면 위치를 바꿔 앉으면 된다.
이 세상에 모든 경험을 똑같이 한 사람은 없다. 일란성쌍둥이도 안 그렇다. 하다 못해 나이와 부모 연봉이 비슷한 집의 아이들이라 해도, 쌍둥이는 간식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경쟁할 것이며, 외동은 남아돌아도 안 먹고 내버려 둘 것이다.
예를 들어서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을 쓰려한다고 치자, 관용적인 속담이다. 그럼 '잃어버린 결혼반지 하나 찾으려다가 집 안의 모든 옷과 가방을 꺼내 뒤지는 바람에 고물상에 쌓이듯 물건이 쌓였다.'라고 써보는 연습을 하는 거다.
이렇게 중요한 팁을 남발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것도 다이어트 방법처럼 알려 줘도 못 따라 한다. 나중에 조회 수가 천이 넘으면 내려야지. (예전에 글쓰기 선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