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일이다. 스스로 보기에 '오늘 글빨 잘 받았다' 싶은 날에는 라이킷 수가 증가한다. '오늘 글은 아쉽고 부족하다' 싶은 날에는 역으로 줄어든다. 역시, 잘 쓰는지 못쓰는지는 자기가 제일 잘 안다. 아무튼, 오늘 할 이야기는 이게 아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하교 시간 후에도 학생 관리차원에서 연락이 오는 일이 종종 있었고,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을 붙들고 말리기도 했다. 대학 교수님은 아이들의 개인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어떤 과제를 제출 안 하거나 시험을 미응시'하면, 낙제나 유급도 가감 없이 시킬 수 있었다. 당할 뻔 한 적 있어서 안다. 재량권이 회사에서 단체 회식 메뉴를 당일 바꿀 수 있는 부장님 이상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중간에 학부모가 껴 있지 않고,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문예창작과(이하 줄여서 문창과)였다. 영화과나 극작과가 손잡고 같이 수업을 편성하는 일도 있곤 했다. 이름은 '문창과 수업'이지만 내용과 성격은 영상수업인 것이었다. 그 교수님은 내 부모님보다 두 살 어렸다. 학생 수가 오십 명이 넘었지만, 웬만하면 이름을 다 외웠다. 일 학년 때 수업 들었을 때는 삼 학년 때 다시 듣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과제 양이 다른 수업의 1.5배는 되었고, 무엇보다 학교 앞 백 평짜리 호프집에서 한다는 종강파티에도 안 나갔다. 인원이 많아 대화도 많이 못할 것 같았고 참가비 오천 원 받는다고 해서였다.
불 끄고 영화 보며 해석을 들었다. 원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는 프랑스 전통 마카롱과 한국 뚱카롱 정도로 차이가 크다. 솔직히 대부분 지루했다. 한번은 '감각의 제국'이라는 일본 영화를 틀어주었는데, 남성의 고추가 직설적이고 적나라하게 나왔다. 심지어 그 후에 꿈까지 꿨었다. 근데 외설스럽다는 생각도 안 들었던 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고, 어차피 영상은 현실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 전부 입 맞춰놓고 들어가는 거고 연출된 거다.
'또 다른 어떤 교수'가 그 영화를 보고 야동이냐고 했던 모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님은 미쳤다고 했다. 이거 그냥 영환데. 맞다. 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자기가 그런 사람일수록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 일화는 훗날 글 쓰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삭제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생각 나서다. 우아한 백수가 되라던 마지막 멘트. 삼 학년 마지막 날에 종강파티 참가비를 만 원 받는다기에 물었다. "왜 참가비가 오천 원이었는데 만 원으로 올랐어요? 물가가 올라서 그런가요?" "아니, 내가 애들한테 돈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전부 다 산다고 하면 요기만 하고 가더라고. 그래서 술값은 너희가, 안주값은 내가!" 결국 마지막에도 못 나갔다. 모르는 사람들하고 얼굴 맞대고 술 마시는 게 서툴고 어색해서였다. 또, 졸업을 앞두고 틀어진 인간관계에 스트레스 지수는 극단에 달해 있었다. 지금도 죄송하고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때 이후로 한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