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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May 24. 2024

브런치 쓰는 것은 너무 쉽다.

어그로 아님

이백 자 원고지 팔십 매 짜리 소설을 써오라는 과제가 내려오면 삼 일 만에 완성하곤 했다. 심지어 하루에 서너 시간만 투자하고 나머지는 놀았는데 그랬다. 젊음이 넘치던 이십 대 시절이었다. 지금은 늙었다는 건 아니지만, 문득 거울을 들여다보면 팔십 대 노인의 표정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축 처진 입꼬리며 초점 없는 눈빛이 그렇다. 고목나무 빛깔을 닮은 피부빛 또한 그렇다. 보통 십 년 이상 연락 안 된 사람은 모르는 사람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나. 십 년 전의 필자를 알던 사람들은 지금 보면 못 알아볼 것이다. 단순히 살이 찌고 빠지고 성형을 했네 안 했네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일인물이 아니다. 그저 지문이 같은 사람일 뿐. 정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다. 삼 년 간의 예대생 시절은 아직도 마음속에 여진을 일으킨다.

브런치 에세이를 쓰는 것은 너무 쉽다. 마라톤 풀코스 뛰던 사람이 학교 운동장 네다섯 바퀴 슬슬 도는 것을 힘들다고 할까? 창작의 고통이라 말할 것도 없다. 그냥 있었던 일을 정확한 문장력으로 써내면 된다. 그간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느낌이었다. 수면 시간을 갈아 넣어서 쓰는 브런치 작가님들도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폄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을 존경한다. 학교 운동장만 뛰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먼 훗날 마라토너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가슴에 지니고 뛰는 사람은, 설렁설렁 뛰는 사람과 마인드가 다를 것이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때를 돌아보면, 하루하루 실력이 느는 게 좋아서 그랬다. 학교 끝나고도 딴 길로 새지 않고 집으로 곧장 가서 랩탑부터 켰다. 안티에이징 크림을 아무리 발라도, 이십 대 때의 피부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다신 돌아갈 수 없겠지만 말이다. 돈을 받고 글을 썼던 경험도 몇 번 있었고, 강의도 했었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아예 하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변화이지만, 사실 이건 원래 생각하거나 계획했던 게 아니다.

브런치에서 몇몇 작가들의 글을 보다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연재를 하다가 결국 어느 시점에는 중단했다는 것이다. 행성이 결국 폭발하는 것처럼, 내 글쓰기에도 끝은 있겠지. 언제냐가 문제인 거지. 답답하다... 답답...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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