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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Jul 28. 2024

술집의 맞은편 테이블과 순대트럭

안산 대동조이월드

작년에 대동조이월드 사 층에 있는 술집을 찾았다. 칵테일바였다. 바닥의 깊이가 잘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고, 몸을 들썩거리게 하는 재즈가 나오고 있었다. 들어서자 20mm 정도로 밀었는지, 머리칼이 짧은 사내가 맞아주었다. 항공점퍼를 입고 있었다.

"일행 있으세요?"

"아니요."

"신분증 검사 좀 할게요."

"네? 저 서른 살도 넘었는데요?"

운전면허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없으면 다른 술집을 배회했을 수도 있었다. 절반 정도 잔을 비웠을 때, 맞은편 자리에 앉아 있던 손님들과 눈이 마주쳤다. 네 명이 있었다. 조명의 색이 파랑, 보라, 주홍으로 일렁였으므로 앞이 선명히 보이지는 않았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십 대 초반 애들인 같았다. 이십 대 때, 삼십 대들과도 어울려 다녔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만난 아홉 차이 나는 언니와, 여행 가서 만난 언니 오빠들과 그랬다는 것이다. 필자가 그랬기 때문에 남들도 그렇게 할 줄 알았다. 막상 삼십 대가 되니 이십 대들이 안 놀아준다. 여행 가서 도미토리 숙소에 묵는 것도 조금 망설여질 정도다. 같은 방을 쓰던 이십 대들의 MBTI를 주제로 한 대화에 끼지 못해서 슬그머니 밖을 나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아무튼, 술집에서 쳐다보다가 싸움날 수도 있는데도 계속 그랬다.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은 늘 익숙했는데, 그날따라 교복을 처음으로 맞춘 예비 중학생처럼 어색했다.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몰라도 얼굴이 불그스름해 보였고, 치아가 횡으로 반쯤 드러나 들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십 도가 넘는 것을 마셔서 금세 취했고, 한 시간 만에 계산하고 일어났다. 지하철을 한번 잘못 타서 수원까지 갔다가 집에 왔다.

한동안 그 일은 잊고 살았다. 그 후 겨울이 찾아왔는데, 집 앞 지하철 역에 안개를 닮은 김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순대트럭이었다. 못 먹어본 지 오래되었다, 맛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은 나무 도마에 대고 소리가 나도록 썰고 있었다. 그 옆에 여자 네 명이 둥글게 모여 서있었다. 이삼십 대처럼 보였다. 스티로폼 그릇을 든 여자가 가운데에 서있었다. 넷이서 하나를 나누어먹고 있었다. 맨손에 기름기 묻혀가며 말이다. 빵 조각 하나를 나누어 먹는 비둘기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아마 술자리가 파한 것처럼 보였다. 디저트인 셈이겠지. 또 한참을 쳐다보다가 들어왔다. 눈 마주치면 싸움 날까 봐 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이젠 습기에 방바닥이 끈적거리는 여름이 왔지만, 자꾸 생각난다. 아빠는 엄마에게 필자를 정신병원에 데리고 가보라고 했다. 만약에 끌려가게 된다면 이야기할 테다. "비싸봐야 몇천 원이면 먹을 수 있는 그깟 순대, 못 먹어서 서운한 게 아니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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