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맛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A원두와 B원두로 만든 커피를 각각 마셔보고 구분해 낼 수 있는 사람. 바리스타 정도를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조금 텁텁하기는 하지만, 씁쓸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혀 전체를 감싼다. 잠이 진짜로 깨는지도 모르겠다. 점점 내성이 생기는 것 같다.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초콜릿 하나를 사 먹고 잠 깨는 게 가성비가 더 좋다는 생각마저 든다. 술 마셨을 때보다 오히려 더 자주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마시는 걸까?
이삼 년 전부터인가, 무인카페가 점차 생겼다. 처음에는 반경 1km 당 하나씩 있던 것이, 두 개에서 세 개, 열 개로 늘었다. 지금은 네이버 플레이스에 검색하면 창문에 들러붙은 밤벌레 무리처럼 우수수 떠오른다. 강남이나 건대입구 같은 곳에도 있다는 것도 신박하다. 유동인구 중 대다수가 약속이 있는 사람들 아닌가. 보통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두세 시간 이상 앉아 있기 힘든 장소다.
서울에 산다고 해서 전부 지하철역 코앞에 사는 게 아니다. 언덕이 있는 경우는 버스를 타야만 집에 갈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구석진 곳이 한 군데 있다.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삼십 도가 넘는 더위에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개업한 '유인'카페 중 하나는 오 개월 만에 폐업을 했다. 그 정도면 하루 객수가 열 명도 안 되었다는 뜻이다. 거기 근처에 무인카페가 하나 생겼다. 맛은 다른 곳이랑 별 차이를 못 느끼겠고, 가격은 당연히 유인카페보다는 저렴했다. 거기서만 마시기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좀 넘었다.
다른 손님이 있을 때보다는 없을 때가 더 많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때가 있다. 몸을 녹이거나 식히고 가기 위해서다. 물론 CCTV가 있고, 주인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기에 아예 혼자는 아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단 돈 몇천 원으로 전세 낸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요즘 같이 습할 때는 에어컨 바람을 정면으로 맞을 수 있는 명당자리에 경쟁 없이 떡하니 앉을 수 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데에는 길어도 삼십 분 정도가 걸린다. 몇 모금 되지 않는 아쉬움에 쪽쪽 소리가 나도록 남은 몇 방울마저 빨대로 빨아 마시곤 한다. 호사를 누릴 수 있어서 좋지만, 너무 의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결국 평생이라는 건 없고 언젠가는 폐업할 텐데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가끔가다가 물티슈나 빨대가 떨어져서 없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가성비 넘치는 카페가 있을까.
필자는 카페를 좋아하는 걸까,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썸을 타는 사람과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보라는 말이 있다. 긴장을 했을 때의 두근거림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을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린 모두 나만의 착각 속에 빠져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