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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Jul 30. 2024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진짜 문제점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있는 자들

등산을 여전히 싫어한다. 땀나고, 덥고, 벌레가 들러붙고, 심지어 올라감이 있으면 내려감이 있다는 것이 진리다. 때문에 서울에 살면서도 북악산, 도봉산 한 번을 안 가봤다. 막걸리도 태어나서 한 번도 안 마셔봤다. 하산 후 마시면 그렇게 맛있다던데.

이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가족들에게 끌려서 등산을 갔다. 초등학생일 때는 사실상 인생의 선택권이 거의 부모에게 있지 않는가. 사립학교에 갈지, 공립학교에 갈지, 강남에서 진학할지, 지방에서 진학할지, 심지어 휴가조차도 혼자 못 간다. 그냥 집에 묶인 개 한 마리라고 보면 된다. 가끔 무인점포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킥보드나 자전거로 접촉 사고를 내는 초등학생을 보면 부모 욕을 하면 된다.

어쨌든, 등산 내내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찼다. 목이 말라도 참아야 했다. 개울이 나올 때마다 손을 국자처럼 오므려서 떠마셨다.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없었다. 아직도 고행의 시간으로 여겨진다. 삼천 배를 하는 사람들은 그 끝에 어떠한 성취감과 개운함을 얻는다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어른이어도 못 견딜 시간이었을 것 같다.

더 설명을 안 해도 알겠지만, 하산 후 모두 기진맥진했다. 흙을 뒤집어쓴 것도 덤이었다. 맛있는 음식 같은 것도 사실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일 초라도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누구라고 딱 지칭해서 말하진 못하겠는데, 집안 어른 중 한 명이 운전을 해서 귀가하기로 했다. 비포장도로라서 덜컹거림이 심했다. 진동 때문에 온몸이 상하좌우로 움직였고, 창밖으로 보이는 타이어는 작은 황사를 일으켜댔다. 그런데 갑자기 차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웬 이십 대 아가씨 둘이 보였다. 히치하이킹이 아니었다. 그냥 '사이드미러로 보니 쳐다보길래' 세웠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까지는 삼십 분이 넘도록 걸릴 것이었고, 직행 마을버스는 없을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여자들도 초등학생들이 있으니 성추행이나 살인사건은 일어나지 않겠구나, 생각하고 안심했던 것 같다. 차비도 아낄 겸 옳다구나, 아무나 하나 걸려라 했는데 통했구나! 했던 것 같다.

동생은 뒷좌석에서 끌어내려져 조수석에 앉은 어른의 무릎 위에 탔다. 필자는 뒷좌석에서 그 여자들과 끼여 앉았다. 땀 때문에 온몸이 끈적한 상태여서 남의 살과 조금만 스쳐도 온갖 짜증이 밀려올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에어컨을 튼 게 무색할 정도로 불쾌지수가 치솟고 있었고 창문에 몸이 밀착되었는데 두피에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암만 어른보다야 덩치가 작다지만, 좁아서 가랑이가 딱 붙을 정도였다. 퍼스널 스페이스 따위 없었다. 인체에서도 열기가 뿜어져 나오지 않는가. 체감 온도는 삼십 도가 넘었을 텐데 겨울잠에 들고 싶은 곰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그 상태로 거의 서울 근처까지 온 것으로 기억한다. 터미널이나 번화가까지만 태워다 주면 될 텐데 어떡하다가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아마 눈치껏 내리지 않았겠지. 더군다나 '작은 아이는 이쪽으로 보내세요. 저희 무릎에 앉힐게요'라는 예의상의 멘트도 없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착함'은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필자가 만 원 이하의 비용으로 안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던 것도, 의료인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것의 몇 배 비용이지 않았을까. 그런 거랑 같은 이치다. 남은 비용은 거저 없어지거나 태워지지 않는다. 사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최측근들은 오늘도 몇 시간의 기다림이 있거나, 10kg이 넘는 짐을 들고 있거나, 하지 않아도 될 지출을 하고 있거나 하지 않을까. 동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정의 대상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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