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혼자 갔다. 매번 한 달 이상의 장기여행은 아니었고, 한 번 갈 때마다 열흘 남짓 시간을 보내고 왔다. 매번 느끼지만, 혼자인 사람을 보기 어렵다. 인천공항에서 체크인 카운터에 줄을 설 때마다 느낀다. 유럽여행을 일평생 한두 번밖에 없을 이벤트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웨딩 시장에서 신랑, 신부를 가장 쉽게 현혹하는 멘트도 바로 그거다. "일평생 한 번인데, 이 정도 돈은 쓰시죠!" 처음은 있어도 마지막은 아닐 수도 있다. 한 방에 유럽의 모든 랜드마크를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프랑스 시골은 처음이었다. 알자스였는데, 사실상 스트라스부르 기차역은 웬만한 파리의 기차역만큼 컸다. 독일 접경 지역이라 그런지 독일식 건축양식이 보였다. 어느 식당에서 사 먹은 파스타의 맛은 오뚜기 소스로 만든 것과 맛이 비슷했다. 와인은(피노 블랑) 태어나서 마셔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이틀을 묵기로 했기에, 둘째 날은 숙소에 짐만 놓고 옆 동네 콜마르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것은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주말이라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의 여행후기를 보니 같은 경험을 한 것이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뭘 해서 돈을 버는지, 주말에 놀러는 안 가는지 궁금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한 오토바이에게 순서를 양보받았다. 목례를 한 후 건넜는데 그때부터 이삼 층 짜리 반목조 건물들과 골목길이 펼쳐졌다. 새소리 하나 나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골목을 걸을 때마다 영화 세트장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오후 햇빛이라 살짝 노란 감이 있었는데, 창문들을 비추었다. 서울의 한 동네에서도 새벽 시간을 제외하면 이럴 일이 드문데,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쁘띠 베니스라는 관광명소에 다다르자, 인파가 보였다. 유럽 식당은 쉬는 시간이 세 시간 이상이므로, 밥때를 놓쳐서 점심을 굶었다. 빵집 창문을 들여다보았다가 벌레들이 수십 마리 꼬여 있는 것을 보고 바로 포기했다. 혼자 다니면 가장 힘든 점이 사진을 찍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만에서 왔다는 한 부부와 마주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몇 달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다시 아까의 그 골목길을 거쳐 기차역으로 향했다. 걷는 내내 다음에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에 시선을 건축물들과 백 년은 된 창틀에 고정했다. 넘어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걸었다. 파리의 오스만 양식도 멋지지만, 유럽 시골의 정취는 정겨움을 같이 품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전깃줄이 허공에 있지만, 유럽은 땅에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더더욱 건축물끼리의 사이가 가까워 보인다.
유럽은 마약과 같다. 동서남북을 다 둘러보려면 최소 여덟 번 이상은 가야 하는데, 그마저도 다 볼 수는 없다. 앞으로 또 몇 번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과 시간과 체력이 되는 한 가려고 한다. 오늘도 유럽에서 사 왔던 컵에 커피를 마시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