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새벽 2시에 걸려온 이수현 부장의 전화는 흥미진진한 소식을 가져왔다. 잠이 확 달아났다.
"대형 서점이요? 어느 서점인데요?"
"교보문고예요. 신간 소개 코너에 저희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교보문고라니. 그 유명한 서점에서 내 책에 관심을 보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주신 거예요?"
"사실 출간 전 마케팅 차원에서 미리 몇 군데 서점에 기획안을 보냈거든요. 그런데 교보문고 담당자가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직 책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관심을 받다니.
"부장님, 제가 너무 늦은 시간에 원고를 보내서 깨우신 건 아니죠?"
"아니에요! 저도 잠 못 자고 있었어요. 너무 흥미진진해서요."
다음날 오전 출판사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교보문고의 제안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김진우 대표, 이수현 부장, 그리고 마케팅 담당자까지 모였다.
"교보문고에서 신간 추천 도서로 선정하고 싶다는 거군요."
김 대표가 서류를 살펴보며 말했다.
"네,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출간 전에 미리 샘플을 봐야 한다고 하거든요."
"샘플이요?"
"책의 일부분을 먼저 공개하는 거예요.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싶어 하세요."
마케팅 담당자가 설명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출간 전 마케팅이 중요해졌다는 것이었다. 특히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는 미리 내용을 공개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고 했다.
"매화씨 생각은 어떠세요?"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됐다. 솔직히 말하면 부담스러웠다. 아직 책도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는데 벌써 공개한다는 게...
"어떤 부분을 공개하게 되는 건가요?"
"보통은 서문과 첫 번째 챕터 정도예요. 독자들이 책의 전체적인 톤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로요."
첫 번째 챕터는 내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부모님의 죽음과 그 이후의 힘든 시간들... 과연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셔도 돼요."
이수현 부장이 배려심 깊게 말했다.
"아니에요. 해보겠어요. 어차피 책으로 나올 내용이니까요."
며칠 후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에 내 책의 일부가 '출간 예정 도서' 코너에 올라갔다. 제목은 '다시, 매화꽃이 피었습니다 - 미리보기'였다.
처음에는 조회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서서히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댓글들이 하나둘씩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책 나오면 꼭 사서 읽을게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많이 공감됩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신 분의 이야기라니... 저에게도 용기가 됩니다."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이야기가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댓글이 있었다.
"저는 현재 이혼 소송 중인 30대 여성입니다.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상황에서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 글을 읽고 희망을 얻었습니다. 작가님처럼 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댓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모든 반응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너무 자극적인 소재로 관심 끌려는 것 같다."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내야 하나?"
"아이들한테 민폐 아닌가요?"
부정적인 댓글들을 보면서 상처받기도 했다. 특히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 댓글은 마음을 찔렀다. 혹시 정말 아이들에게 피해가 되는 건 아닐까?
그날 밤 전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잠깐 얘기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야?"
상황을 설명하자 전남편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정말?"
"네가 겪은 일들을 솔직하게 쓴 거잖아.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도 사랑으로 쓴 거고."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한테 직접 물어봐. 그런데 내 생각에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것 같은데."
다음날 아이들과 만나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엄마가 책을 쓰는데, 찬이랑 환이 이야기도 나와. 괜찮을까?"
"당연히 괜찮지! 엄마 책에 우리가 나온다고?"
찬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응. 엄마가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는지 쓴 거야."
"와! 대박!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
"너희가 괜찮다면..."
"괜찮아! 우리 엄마가 작가라니까!"
아이들의 반응을 보니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이수현 부장에게서 또 다른 소식이 왔다.
"매화씨, 온라인 조회수가 10만을 넘었어요!"
"10만이요?"
"네! 그리고 사전 예약 주문도 벌써 500권이 넘었어요."
아직 책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반응이라니. 꿈만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요. 한 출판평론가가 매화씨 글에 대해 칼럼을 썼어요."
"칼럼이요?"
"네. 요즘 출간되는 에세이들과는 다른 진정성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어요."
출판평론가의 칼럼까지. 점점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본격적인 편집 작업이 시작됐다. 이수현 부장과 함께 원고를 한 줄 한 줄 점검하고 다듬는 작업이었다. 문장을 다듬고, 구성을 조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이 부분은 조금 더 자세히 써주시면 좋겠어요."
"어떤 부분이요?"
"할머니와의 에피소드요. 독자들이 가장 감동받는 부분 중 하나거든요."
할머니와의 추억들을 더 자세히 써 내려갔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신 옛날이야기, 힘들 때마다 끓여주신 미역국, 내가 잘못했을 때조차 감싸주신 따뜻한 마음...
편집 과정에서 제목도 다시 검토했다. '다시, 매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너무 뻔하지 않냐는 의견이 있었다.
"다른 제목 후보는 없을까요?"
여러 제목들을 놓고 고민했다. '매화꽃 필 무렵', '다시 피어나다', '꽃잎 사이로'... 하지만 결국 원래 제목을 유지하기로 했다. 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표지 디자인 작업도 시작됐다. 디자이너가 여러 시안을 가져왔는데, 그중에서 매화꽃이 그려진 따뜻한 느낌의 디자인을 선택했다.
"이 표지 정말 예뻐요."
"매화씨의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출간 일정도 확정됐다. 한 달 후인 5월 중순. 진짜 매화꽃이 피는 계절에 맞춰서였다.
마케팅 계획도 구체화됐다. 온라인 서점 이벤트, 북콘서트, 언론 인터뷰까지...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혹시 방송 출연도 하게 될까요?"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몇 군데에서 문의가 들어왔거든요."
방송 출연이라니. 상상만 해도 떨렸다.
드디어 최종 원고가 완성됐다. 인쇄소에 넘겨져서 실제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만 남았다.
"이제 정말 끝났네요."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에요."
이수현 부장의 말이 맞았다. 책이 나오는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독자들을 만나고, 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진짜 여행이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날 밤 할머니께 모든 과정이 끝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 드디어 제 책이 나와요."
"정말? 언제?"
"다음 달이요. 할머니가 제일 먼저 읽어보세요."
"그럼. 할머니가 첫 번째 독자가 되는 거구나."
할머니의 기쁜 목소리를 들으니 그동안의 모든 힘든 과정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이수현 부장이었는데, 목소리가 조금 당황스러워 보였다.
"매화씨, 급한 일이 생겼어요. 내일 아침에 출판사로 오실 수 있나요?"
"무슨 일인데요?"
"KBS에서 연락이 왔어요. 매화씨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