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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기준 : 성묘와 히츠마부시

추석 연휴의 첫 하루를 보내며..

by 자크슈타인


모처럼의 긴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사실 오늘은 개천절 공휴일이고 내일은 그냥 평소와 같은 주말이지만, 바로 추석과 이어져 다음 주 금요일만 쉬면 10일간의 연휴가 완성되더라는.


자영업자가 휴일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한가위 긴 연휴라니, 한 템포 쉬어가는 명절 기분은 난다. 어차피 주변 고객사, 거래처들이 거의 다 쉬니 나 혼자 개점해야 휴업 비슷한 상태겠지만.. 실은 이런 타이밍이 그동안 급한 거 먼저 하느라 제대로 못하거나 건드리지 않고 있었던, 중요한 일들에 대한 진도를 빼기에 적기라는 것.


그저 나의 게으름이 나의 발목을 잡지 않길 바랄 뿐.


오늘 연휴의 첫날 오전에는 잰걸음으로 성묘를 다녀왔다.

비 예보가 있었는지 몰랐기에 적당히 흐린 날씨에 투둑투둑 약간의 빗방울이 살짝 떨어지는 게 시원하니 오히려 좋았건만. 용인을 지나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거세지는 빗줄기가 장난이 아니더라. 그야말로 꼼짝없이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절 올리게 생겼다 싶었을 때, 주차를 하고 가족묘 자리 앞에 서니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가느다랗게 변하더라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동안 자주 찾지 않았다고 화를 내셨다가 할머니, 작은아버지가 말리셔서 빗줄기가 잦아들었나 싶다. 그렇게 술 한잔 따라드리고 두 번씩 절을 올리는 시간만이라도 세속의 삶에 뒤엉켜 잊고 지내던 부모님과 조상님을 기리는 마음을 가져본다.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침도 못 먹고 왔을 거라며 걱정하시는 어머니, 아들 집까지 가면 머니까 중간에 어디 맛난 음식점 가서 밥 먹고 들어가자시는 말씀이 왠지 가슴에 아린다. 다 늙은 아들 녀석이 당신 눈에는 여전히 어리디 어린 막내로만 보이실 테니.. 그 말씀 군소리 말고 들어드리고 싶어진 나도 이제 조금은 철이 든 걸까.


어딜 갈까 잠시 고민하다, 히츠마부시(ひつまぶし) 맛집인 마루심 강남점이 근처인 게 생각나 명절을 앞두고 사장님 나와 계시면 인사도 드릴 겸, 방향을 그리로 돌렸다.

휴일인 데다 조금 이른 점심시간에 와서인지 아직 손님은 많지 않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비 오는 날의 습한 불쾌감을 깨끗이 날려준다.


이제는 연로하셔서 입맛도 예전 같지 않으신 걸 알기에 어머니 입맛에 맞을지 은근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맛있게 잘 드신다. 히츠마부시와 초밥정식, 장어고무스비를 주문해 골고루 맛을 보았는데, 사장님께서 모듬튀김과 메뉴에도 없는 창의적인 별미를 또 서비스로 주셔서 맛있고 배부른 점심을 즐길 수 있었다.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한 지는 좀 되셨다. 이런저런 드시는 약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 데다 거동도 조금은 불편하시지만, 아직까진 그래도 연세에 비해서는 많이 건강하신 편. 올여름에는 어머니 모시고 여행도 다녀왔지만, 그나마 이런 건강이 어느 순간 그래프가 확 꺾이며 안 좋아지시는.. 그런 때가 올까 봐 내심 걱정이다.

사실 그런 순간이 언제 찾아와도 이상하지는 않으실 연세라, 여름의 여행도 갑작스럽게 잡았었다. 어디 돌아다니시지도 못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이곳저곳 다니고 맛난 음식도 드시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그만큼의 추억을 더 쌓고 싶어서..


점점 멀어지는 왕래, 세대 간의 단절, 줄어든 대화, 커가는 아이들이 꿈꾸는 자신만의 삶..

니가 옆에 있어도 나는 니가 그립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런 류의 시와 노래들.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보다 같이 있을 때의 외로움이 더 아프고 시리다.


내가 그런 처지에 놓일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아직 내 곁에 남아계신 부모님께서 헹여나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 그러니 난 아직 젊은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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