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 Sep 06. 2024

말을 이해하는 꽃, 기생초

쪽빛 하늘아래 노란 꽃잎에 거먕 치장한 꽃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왜 우릴 기생초라고 부르는 거야? 하고 많은 이름 중에 기생이 뭐야! 난 그렇게 부끄러운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아!" 산들바람이 부드럽게 기생초 꽃잎을 쓰다듬으며 "너희가 사람들 흥을 돋워주기에 불려진 거야. 과거엔 아무나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없었어. 눈으로 그 마음을 채워주던 꽃이었지. 기생은 궁중 의례와 연회의 예술 전문가였거든. 우상처럼 돋보이는 연예인이었단다" 그 말은 들은 어린 기생초가 "아이돌이나 탤런트라면 괜찮은데, 기생이란 어감이 싫어요." 산들바람이 빙긋 웃으며 "세월이 지나 좋은 뜻이 다르게 불리게 된 말이 많아. 예전에 나리는 왕자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는데, 높은 사람을 비야냥거리는 소리가 되었고 무당이 죽은 자의 혼을 불러 하소연을 들어주던 넋두리는 불만 불평을 털어놓은 뜻이 되었어. 그리고 궁중에서 왕비를 높여 부르던 마누라는 제 아내를 부르거나 남의 아내를 낮춰 부르는 말이 되었으니까 말이야. 오히려 옛사람들이 후대가 다른 뜻으로 말한다는 걸 알면 기겁할 거야"

기생초 꽃말은 다정다감한 그대의 마음

못내 화가 덜 풀린 기생초가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죠. 시대가 변했는데 바꿔 불러야 맞죠" 산들바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런데, 또 시간이 흘러가면 또 다르게 바뀌어질 수도 있어. 과거보다 훨씬 좋은 말이 되기도 하거든" 어린 기생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런 경우도 있어. 늦깎이는 늦게 머리 깎은 스님을 뜻했는데, 세상 이치를 남보다 늦게 깨달은 이로 뜻이 바뀌었어. 그리고 너희가 잘 아는 개살구나무, 개머루나무, 개암나무, 개다래는 열매가 부실하다는 뜻으로 개를 붙여 구박받던 식물이었는데 요즘은 그 열매가 건강에 좋다고 언제 그랬더냐는듯 제법 대우하지. 게다가 젊은이들도 말 앞에 개를 붙여 넣어 가장 좋다는 의미로 쓰기도 해. "아무리 칭송받는 뜻을 가졌더라도 그 말에 무게를 짊어진 이들이 제대로 하지 못해 비웃음거리나 비아냥대는 말이 되기도 했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한 뜻이었는데 참된 속을 알게 되어 대우받는 말이 되기도 했어. 그러니 제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남에게 아름답게 봐달라고 기대하는 것보다는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현명할 거야. 

기생초는 한해살이 풀로 원산지는 북아메리카

"과거에 선비들이 기생을 해어화라고 말을 이해하는 꽃이라는 칭송했을 만큼 문학, 음악과 같은 예술에 조예가 깊었어. 누군가 알아주는 것은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야. 아이돌이 긴 연습생 시절을 보내는 것처럼 기생들 역시 서예와 시 그리고 문장 같은 문학적 소양뿐을 배우고 혹독한 과정을 통해 판소리, 가야금, 궁중무 등 예술적 재능을 갈고닦은 것이지. 높은 관직으로 올라가는 이들도 있었는데, 고려가요를 현대까지에 전해준 고마운 이들이야. 너흰 그런 기생처럼 아름다운 꽃으로 불렸던 거야. 그런데 일제가 전통을 변질시켜 사회적으로 경시하게 만들었고 나쁜 의미로 퇴색시켰지. 요즘 우리 음악이 전 세계를 무대로 가치를 뽐내고 있어. 그런데 그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시대가 바뀌어 딴따라, 환쟁이, 글쟁이로 부르며 예술을 낮춰보는 시선도 바뀌고 있는데, 이제는 오히려 너희가 기생이란 이름도 아름답게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 산들바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불만 가득했던 기생초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 생각이 부끄러웠는지 거먕 무늬가 더욱 짙어졌다. 

잎은 코스모스, 꽃은 루드베키아를 닮았다

산들바람이 만족스럽게 기생초를 보며 "역시 너희들은 내 말을 알아듣는구나! 해어화라 불릴 만 해. 누가 날 어찌 보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 말에 귀 기울여 듣는다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 거야. " 가을이 깊어지던 날, 사늘한 바람이 가볍고 보드랍게 속삭였다.

작가의 이전글 꽃며느리밥풀의 질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