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꽃무릇이야. 알뿌리가 마늘을 닮아서 석산(돌마늘)이라도 불러"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 진홍색 물결, 잎도 달리지 않은 긴 꽃대에 꽃잎보다 길게 우산살처럼 펼친 꽃술 어때? 생뚱맞게 꽃대부터 올리고 꽃이 핀 것이 신기할 거야. 벚나무, 개나리, 산수유, 목련이 봄에 잎보다 꽃을 먼저 피는데, 난 가을에 피는 풀이란 것이 다르고 늦게 낸 잎이 봄까지 견뎌내지. 꽃과 잎을 내는 정해진 순서도 없고 사계절 언제, 어디, 어찌하는 것이 좋고 나쁘고 나뉘지도 않아. 다름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제 방식이 있는 거니까." 난, 꽃을 피어도 열매를 거의 맺지 않아. 알뿌리가 마치 씨앗과 같아서 대부분의 힘을 저장했다가 꽃과 잎을 내기도 하고 뿌리를 나누어 터를 넓혀가기도 하거든. 수선화, 튤립도 알뿌리를 갖고 있는데 그들의 겨울은 봄에 꽃을 피우는데 힘을 쏟으니 내 겨울과는 사뭇 다르지. 친척뻘인 상사화는 나와 반대로 잎이 먼저 난 후에 꽃을 피우니 나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긴 어렵겠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고 이별, 슬픔을 말하거나 붉은 꽃과 독성이 강하다고 해서 죽음을 떠올리는데 단편적인 생각인거지.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죽음과 삶도 갈라놓을 수 없는 하나인데, 굳이 편을 가르듯 나눠서 달리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아마도 그 사이엔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 만남과 기쁨 그리고 삶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내게도 있지. 겪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를 상상하는 거지. 마주 대하면 오히려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몰라. 알뿌리로 땅 위로 솟아오르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 있었어. 편안하게 이곳에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는데, 막상 따뜻한 햇볕을 만나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걱정했더라고. 꽃을 보고 찾아온 나비에 뛸 듯이 반가웠는데, 꽃이 지고 나니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거야 상상하기도 했어. 그렇다고 어차피 헤어질 테니 만남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런데 정말 두려웠던 것은 내가 갈라져 나왔던 큰 알뿌리가 더 이상 꽃대를 올리지 못하고 점점 수척해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어. 다신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곤 했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본 큰 알뿌리가 말했지 "얘야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자연스러운 거니까. 나도 내가 나온 알뿌리가 죽는 것을 보았는데, 이젠 내 차례가 되었어 하지만 우린 오늘 살고 있는 거야. 꽃이 지면 잎이 피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없지. 마치 땅 위로 처음 올라왔을 때 느꼈던 감동처럼 내가 머물던 큰 알뿌리에서 벗어나 또 다른 곳으로 이어져 있는지도 몰라. 날 기억해 준다면 내 거울이 이곳에 남겨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생각했지. 나도 누군가에게 거울이 되어 남아있다면 좋겠다고. 그래서 두려움과 고민을 벗어날 용기를 갖게 되었고 어제가 아닌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지.
죽음도 볼 수 없는 옷을 가진 사람이 있었어. 그 옷을 입으면 죽음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 그런데 그는 죽음을 피하려고 옷을 입는 대신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 만약 그 옷을 입고 죽음을 피하려 했다면 어떠했을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는데, 얼어 죽지 않으려고 겨우살이는 준비하고 견디면서 정작 그 행복은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이젠 스스로 훌륭하게 살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던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래.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알뿌리가 작아서인지 두렵고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나 봐. 너희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