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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04. 2024

열정과 냉정사이, 두려움의 간극


어릴 적 내가 살 던 동네는, 산기슭에 있던 5층짜리 대단지 주공 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는 동네였다. 그 당시 동네에 자동차라곤 아파트 한동에 1~2집 밖에 없었고, 가끔 영업 택시들만 다니던 때라 그 넓은 공터가 다 놀이터였다. 

산 중반에 우리 동이 있었고 우리 집 뒤로는 여자 중학교가 있었는데, 여중과 아파트 사이는 사유지 땅이 있어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창의적 놀잇감을 찾으러 다니던 터라, 아파트 뒤 잔디로 깔아놓은 비탈을 미끄럼 삼아 타고 놀았다. 그 피복 전선 같은 소재로 만들어진 울타리 덕에 자연 안전망이 된 우리의 놀이터. 

그다음 우리의 놀이터는 엄마들이 빨래터로 이용하던 뒷 산의 개울가이다. 한 오빠가 풍덩 하고 뛰어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입은 채로 뛰어들었다. 개구리도 잡고, 소금쟁이도 구경하고, 다람쥐, 토끼를 쫓아다니며 산꼭대기까지 뛰어다니던 나의 하루...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 시골에서 자랐니?’라고 묻지만, 그 시절 부산 직할시의 모습은 그러했다. 

그렇게 6학년 오빠의 진두지휘로 동네 꼬마들은 동네방네 뛰어다녔고, 어느새 나의 우상은 그 4~6학년 오빠들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오빠들이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햇볕에 그을려서 까맣고 귀찮은 나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그중 착했던 한 오빠가 너도 한번 타봐~하고 앉혀줬지만 내 맘대로 될 리가 없다. 그때 결심한 것! 나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야지! 하고 그날부터 부모님을 졸라댔다. 그러나 평소에도 동네 오빠들 쫓아다니는 내가 못 마땅했던 나에게 부모님이 두 발 자전거를 사 줄 리 만무했다. 그때 나이 고작 6살.. 그렇게 며칠간 울며 불며 떼쓰던 찰나에 어느 날 퇴근한 아빠의 차 트렁크에서 등장한 나의 자전거. 보조 바퀴를 달고는 빠른 속도의 오빠들을 쫓아다닐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빨리 두 발 자전거에 익숙해져야 했다. 아빠한테 보조바퀴를 떼어 달라고 말하곤 한나절 혼자 울며 낑낑대던 찰나, 땅이랑 바퀴가 찰싹 붙은 듯 미끄러지는 몸의 균형을 터득한 순간이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쁨의 냄새가 한 여름날 아스팔트의 냄새로 나의 세포에 각인되어 있다. 그때였던 것 같다. 나의 첫 번째 열정을 만난 것.


그 후 우리는 광안리로 이사를 왔고 (서울로 치자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 온 것), 나의 산골에서의 유년 시절은 화려한 네온사인과 세련된 상점으로 가득 찬 바닷가의 생활로 대치되었다. 

여름날,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한 친구들끼리 튜브 하나씩 들고 바닷가로 뛰어가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다가, 젖은 몸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며 잔뜩 붙어있던 내 발의 모래가 말라서 훌훌 떨어질 때쯤 집에 도착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처음 잠수부터 배우던 나의 수영 실력은 점점 자유형과 배형까지 섭렵하게 되었고, 그 동네 제일 수영 잘 한 다는 오빠와 시합을 겨룰 정도까지..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열정은 바다에서 타올랐다.


생각해 보면, 분명 난 어릴 때 아주 활동적이고, 또래보다 성장이 빨라서 키도 많이 컸던 탓에 학교 릴레이 선수를 할 정도로 꽤 역동적인 아이였는데, 나의 세 번째 열정이 [책]과 [음악]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방구석 아이로 변모를 하게 되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서 꽤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였고, 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8살이나 났었기에 집에 돌아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놀이는 책을 보거나 피아노를 치는 일이었는데, 5학년 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집에 있는 세계문학 전집을 읽는 열정을 불태웠다. 사춘기 감수성을 셰익스피어가 제대로 분출시켜 놓아서 데미안, 주홍 글씨, 설국 등.. 세계문학에 빠져 살았고, 그 감성의 표현을 피아노로 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더 수준 높은 피아노 실력을 갖기를 갈구했고, 그것이 나의 네 번째 열정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음악 대학에 가고 싶다는 나의 열정이 무산되었다. 공부 좀 잘한다는 이유로 아니, 공부를 못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대’를 가라는 집안의 압력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의 열정은 소멸했고, 결국 다시 음대를 가게 되면서 나의 열정은 살아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풍파로 나는 먹고살기 쉬운 길을 택했고, 내 열정의 삶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 나에게 지금에 와서 “열정”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이다. 언젠가 소중한 시간에 만났던 나의 글 친구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하고 신기한 듯 물어봤었는데, 나는 습관처럼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에 생각을 덧입혀 재구성해보는 놀이를 아주 많이 한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는 사람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보며 그 사람의 직업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어떤 특정한 단어를 유독 많이 쓰는 사람들을 보며 그의 성격을 그려보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시선이 결국 나로 돌아와 내 안의 다른 화자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생각하며 노는 나만의 유희. 그렇게 나만의 킬링 타임 공식이 생겨났다. 



이런 끊임없이 상상의 꼬리를 무는 나의 놀이의 시간들은 내 마음속 열정을 잠재우는 수면제로 아주 탁월하다. 그동안의 직접적이고도 간접적인 수많은 나의 데이터가 어릴 적 순수했던 그 간절함을 갖는 데에 무뎌지는 감각을 선사하기에, 난 열정 앞에선 겁 많은 어린아이가 되어 있다. 그 두 발 자전거를 타겠다는 6살의 열정이, 과연 나에게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이제 겨우 안식의 숲을 찾은 것 같은데, 내 마음 깊은 곳에 꽁꽁 묶어둔 열정을 다시 꺼내어야 하나? 냉정을 지키며 지금처럼 살아온 삶이 더 튼튼한 것 아닐까? 주체할 수 없는 내 안의 뜨거운 것이 나올까 봐 두려움으로 심장을 덮는다. 열정과 냉정 사이 그 평화로운 간극을 유지하며 그렇게 나의 열정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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