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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04. 2024

페르소나, 이제 안녕!

나의 페르소나

"어머, 선생님 아이가 있어요?"

"선생님, 집에서 음식도 하세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종종, 아니 자주 듣는다.

30대 중 후반 까지만 해도,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나.. 아직 아줌마 같진 않구나?'하고 꽤 기분이 괜찮았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혼자 반문하게 된다. '나..결혼도 못하게 생겼나?', '살림도 못하게 보이나?' 하고 찜찜한 생각이 들어서, 얼마전 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학부모에게 대놓고 물어보았다."제 이미지가 어떻길래요?", "여태 시집도 못가게 생겼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결혼도 관심없으시고 밤낮으로 일만 하실 것 같았어요."라고 돌아오는 대답. 학부모들과는 왠만하면 거리를 두고 사적으로 엮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한번 만나면 꽤 오랜시간 인연이 지속되는 학생들을 사이에 두고 전혀 사적인 이야기를 안할 수는 없다. 그럴때마다 하나 둘 씩 터져나오는 이야기들은 실제 나의 모습과 많이 다른 이미지에서 오는 질문이나 대화들이 많다.


강원국님의 [결국은 말입니다]라는 책에서 좋은 관계의 원칙으로, 남을 과도하게 의식하지 않기, 남들의 평가와 지적에 무뎌지기,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을 제시해 주셨는데, 왠일인지 마흔중반쯤 되니 이 모든것이 다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어릴때  나라면 '그러던가 말던가', '아님 말고', '너나 잘하세요' 이런 쪽에 가까웠는데, 나이 들수록  남이 하는 말 하나하나 새겨듣게 되고, 다른사람의 좋은 모습이든 나쁜모습이든 나와 비교해보며 저런건 본받아야지, 아니면 진짜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리고 나의 페르소나들이 너무 독립적인 나머지 나 자신조차' 누구지?' 할 정도의 낯선 모습들에 이제 그만, 페르소나들을 무대에서 끌어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만난 어떤 예쁜 여성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분의 인생 전반전은 서비스직이었을 꺼라 예상된다. 몇시간 내내 세상에서 본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예쁜 모습과 표정, 말투와 자세로 굉장한 에너지를 뿜는 분이셨다. 본인이 제스추어를 취하는 각도까지 우아함이 계산된 몸짓에서 숨이 막혔다. 그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아주 편하게 계셨는지 몰라도,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도 없었고, 가면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랜 직업의 페르소나가 자기화가 이루어져있었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태도에서 프로다움은 느꼈지만, 인간미는 찾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페르소나들을 점검한 계기가..


집에서의 나는 '완벽주의자'였고, 밖에서의 나는 '워커홀릭' 이었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헛똑똑이'었으며, 언니들 사이에서 나는 '쿨한 동생'이다. 어느것이 가장 나와 가까운지도 모르겠고, 어느 것이 나와 가장 먼지도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 나의 부분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페르소나로 만든것이 나인데, 각각의 역할들에 의도적인 힘을 넣거나 신경을 쓰는 작업따위가 본래의 나를 치장하거나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언제부터 '페르소나의 민족'이었나? 과도한 마케팅이나 SNS의 영향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부캐들을 만들어 내는 양상이 갈 수록 커지는 것 같다. 솔직히 나는 그런 것들을 보는 것도 이제는 피곤하다. 한 사람을 잘 알기도 힘든데, 그들의 정령들까지 내가 신경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많이든다. 그럴수록, 나 하나라도 심플하게 살고싶다, 자연인이나 될까? 라는, 맥시멀리즘인 내가 절대 하기 힘든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내 생활은 맥시멀리즘일지 모르나, 최소한 나라는 존재 자체는 미니멀리즘으로 살고 싶다. 누가 보아도 '아, 저 사람은 이런사람이구나!'하고 머릿속을 어지럽히지 않는 사람. 그렇게 오늘부터 나의 페르소나들은 내 삶에서 퇴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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