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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04. 2024

말하는대로

나를 살린 말


어릴 때 우리 엄마가 항상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서 하던 말은 "아유.. 얘는 너무 착해."였다. 그래서  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어린 날, 매일 싸우는 부모님에게 한 번도 대든 적 없었고, 안아달라고 어리광 부린 적도 없었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8살 아래인 동생을 챙기는 것도 당연히 내가 할 몫이라고 받아들였고,초등학교 때  상대적으로 집이 부유한 내가 질투난 , 단칸방에 살던 다섯째 막내였던 친구가  이유 없는 나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녀도 혼자 울기만 했다. 중학교 때  소위 불량 청소년인 내 단짝과 어울리면서도, 나는 '착한 아이' 였기에  그 주변 친구들이 흔하게 하던 흡연과 음주를 한 번도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  어쩌다 합창반의 리더가 되었을 때, 나의 '착함'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더 힘들게 했다. 갈등과 분란에 섰을 때, 가끔은 하기 싫은 말도 해야 하고, 모두에게 절대적인 '착함'은 신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렇게 나의 '착함 프레임'은 깨졌다.


어릴 때 부모는 아이들에겐 '신'적인 존재다. 부모가  하는 말의 영향력은 엄청나게 세다. 간혹 학부모들과 상담할 때, " 에이~공부 못해도 되요~ 공부 잘 한다고 다 성공하나요?" 한다. 그러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공부 못해도 된다면서 고액 과외 선생인 나를 왜 부르는가.. 하고. 아마도, 혹시나 본인의 자녀가 "고액 과외"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스스로 위로하려는 프레임을 미리 장착한 건 아닐 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는 아이는 정말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된다.


이렇게,말은 무섭다. 내가 생각없이던진 별 것 아닌 단어의 소리가 각자의 인생에 큰 파동을 일으킨다. 말에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생의 밑 바닥에 있었을 때, 나와 가장 친한 언니가 무심결에 던진 말은, "넌 못하는 게 없잖아!"였다. 그래서 난 못하지 않으려고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냈다. 일도, 돈도, 가정도 다 못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밤에는 수업하고, 낮에는 남편 가게 일을 돕고, 살림하고, 틈틈이 또 다른 것을 배우고.. 힘든 것도 못하지 않으려고 되지 않는 체력을 갈아 넣었다. "넌 못하는 게 없잖아 " 그 말이, 나를 밑바닥에서 끌어 올렸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못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면서  살았던 지난 세월이 좀 속상하다. "넌 다 잘 하잖아!"였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래도 괜찮다.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에서 이만하면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 온 것 만으로도, 나 자신을 메타인지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후하게 줘 본다. 내 기준으로의 성공이 그 사람에겐 진정한 의미의 성공이 아닐 지도 모르고,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삶 조차 다른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속상할 지 모르나, 이런 일련의 경험들이 응축돼서 나오는 내 내면의 생각들은 과거의 나보다 훨씬 아름답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힘듦이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봄이 온다는 자연의 순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나는 어떤 말을 붙잡고 인생을 살아가면 좋을까? 내가 요즘 빠져 있는 알프레드 아들러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라!" 

난 너무도 미래지향적인 성향이라  내가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다. 과거에 대한 미련도,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 아닐까. 내가 원하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과정을 보낸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이 미련한 태도를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무엇을 하면 내가 행복한지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의 인정보다 나 자신의 인정과 기쁨을 중시하는 삶. 그런 멋진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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