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사직서를 썼다. 몇 글자 되지 않는 짧은 형식이지만 글자를 쓸 때마다 손이 떨렸다. 첫 직장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만두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직서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업무를 할 수가 없다고 썼다. 생각해보면 반쯤은 맞는 말이다.
집에는 프린터가 없어서 사직서를 파일째 메일로 옮겼다. 회사에서 출력할 생각이었다.
밤을 샌 김에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갑작스럽고 충격적이라 내내 우울했는데 지금은 피곤한 것만 빼면 그리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어차피 한 번은 그만둘 회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고 일이고 오래 일하기는 어려운 곳이었다. 다만, 그 때가 조금 빨리 왔을 뿐이었다.
출근길에 커피를 한 잔 샀다. 익숙한 알바생이 나를 알아보고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커피가 나오고 나는 쭈뼛쭈뼛 카드를 내밀었다. 알바생은 시커멓게 변한 내 손을 못 본 것처럼 얼른 계산을 했다. 그리고 쿠폰 마지막 칸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다 채우셨네요. 다음번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 공짜예요.”
도장을 다 채운 쿠폰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 커피는 그쪽 드세요.”
“네?”
알바생이 깜짝 놀라서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나는 신호등을 확인하고 얼른 뛰어서 길을 건넜다. 회사 로비로 들어가면서 시원한 커피를 쭉쭉 빨았다. 이제 부장을 겁낼 필요가 없어서인지 홀가분했다. 내가 생각보다 멀쩡하게 출근하자 사무실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과장이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그를 쫓아 책상 앞에 섰다. 그리고 출력한 사직서를 넣은 흰 봉투를 그의 코앞으로 내밀었다.
“뭐야?”
“사직서입니다.”
과장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사직서를 받자마자 이죽거리며 온갖 조롱을 퍼부을 줄 알았더니 웬일인지 갈등하는 얼굴이다. 그는 못마땅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도 내 사직서를 선뜻 받지 못했다.
“너 지금 나 엿 먹이려고 이러냐?”
“…….”
억지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면서 이제와 딴소리다. 과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썹을 꿈틀꿈틀 움직이다가 결국 내 사직서를 탁 채갔다.
“그럼 이번 달 말까지 일하고 나가는 걸로 해. 알겠어?”
“그치만…….”
“알아들었냐고 묻잖아.”
당장 그만두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짐을 싸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어차피 그만두는 마당인데 큰소리라도 한 번 쳐볼까. 과장은 내가 우물쭈물 하는 걸 눈치 채고 재차 다그쳤다. 나는 물먹은 솜뭉치처럼 축 늘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가서 일 해.”
일이 될 리가 없다. 파티션 뒤에 숨어서 일하는 척만 했다. 어차피 곧 나갈 회사라고 생각하니 무서운 것도 없었다. 오전 내내 작업하던 파일을 켜 놓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도 그저 막막했다. 차라리 막막한 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겁이 났다. 앞으로 다른 회사에 들어갈 수는 있을까. 다른 곳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파국을 맞게 될까. 그런 생각들이 구불구불한 뇌 전체를 세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다시는 좋아지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