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았다 뜨니 멀어진 가을을 떠나보내며..
어릴 때부터 1년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었다. 봄은 다들 들떠있어서 너무 소란스러웠고, 여름은 무더위가 싫었으며, 겨울은 추위가 끔찍했다.
그런 내게 가을은 혼자 고독을 씹으며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고, 바람만 맞아도 기분이 좋았았다. 특히 붉고 노랗게 물든 잎들을 사각사각 밟으며 산책하는 건 자연이 주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다.
그런데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면서 가을과 봄은 짧아지고, 올해는 가을공기를 제대로 느껴본 적도 없는데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와버린 느낌이다. 중간없이 갑자기 추워진 계절에 단풍을 즐길 새도 없이 슬슬 겨울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거리는 아직 11월인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창 들떠있고, 여러 카페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다.
가을이 가지고있는 여유와 기분좋은 쓸쓸함을 사랑하던 나는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어딘가 마음 한쪽이 더 공허해진 느낌이다.
내 인생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을이 남아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중 하나를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버려야 한다는 것과, 앞으로 다음 가을이 오기까지 긴 겨울과, 봄, 여름을 다시 지나야 한다는 것에 벌써부터 지쳐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