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미로에서 정서를 읽다
나는 언어의 정서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 시작은 오래전 친구 어머니 장례식을 다녀온 후 저녁식사를 했을 때다. 부모님에 대한 회한 섞인 푸념을 늘어놓던 친구가, 갑작스레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너 고아가 뭔 뜻인지 알아?"
"부모가 없는 거?"
"그럼 부모가 없다는 게 뭔지 알아?"
잠시 대화가 멈췄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내가 '고아'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사전적 의미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천장을 쳐다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고아가 됐다. 이러고 보니 고아가 뭔지 알겠더라. 부모님이 없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겠더라고.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말이야."
국립국어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일상에서 평균적으로 1,200개 안팎의 고유 단어를 사용한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단어의 나열이다. 하지만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를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그러해서 그런 언어를 쓰는지, 아니면 그런 언어를 쓰다 보니 생각이 그리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일상에서 쓰는 언어들은 그들의 생각이나 삶에서 묻어나는 사람의 향기와 같다.
"언어는 생각의 감옥이다"라는 말이 있다. 무심결에 사용하는 언어의 틀에 생각이 갇혀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다. 생각의 폭은 무한대로 넓지만 언어를 사용해 말로 내뱉는 순간 생각은 개념화되어 단순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북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쓰는 언어들에 대해 내 나름대로 던져본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사전적 언어를 감정의 언어로 풀어보고자 한다.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내게 '고아'라는 단어는 여전히 이해와 공감의 대상이지, 온전하게 마음으로 느껴지는 감정의 언어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그 단어를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