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 to the Z Jul 29. 2024

뜨거운 과학기술 이야기

현대인을 위한 교양 과학기술

0. 이야기를 시작하며: 과학기술학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을 정의할 수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하셨나요? 여러분의 대답을 예상해 보기 위해 챗gpt에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기 위한 학문 분야입니다. 과학은 관찰, 실험, 측정, 분석 등의 방법을 통해 지식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자연의 법칙과 원리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좋은 대답입니다.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과학에 대한 좋은 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컴퓨터과학은 과학이 아닌 걸까요? 로봇과 자동차는 어떻습니까? 과학기술의 산물이 아닌 걸까요?


과학의 정의를 쉽게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원초적인 질문이 대답하기 가장 껄끄러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과학 자체가 어떤 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려운 본질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다시 챗gpt의 대답으로 돌아가서, 챗gpt는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측면에 주목하고 있는 듯합니다. 챗gpt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과학은 객관성을 중시합니다.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나 편견이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엄격한 방법론을 따릅니다."


이 문장을 사실에 대한 설명이 아닌 당위성에 대한 주장으로 바꾼다면 이는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이 정말 객관적일까요? 


로버트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에 대해 들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밀리컨은 기름방울을 이용하여 기본 전기전하량을 측정하였고, 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버트 앤드루스 밀리컨. 1909년 하베이 플레처와 일명 '기름방울 실험'을 진행해 기본 전하를 측정.

현대 물리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자 인상적인 실험 설계로 유명하지만, 이 실험은 또한 데이터 조작 논란으로도 유명합니다. 인상적인 실험 설계로 유명하지만, 이 실험은 또한 데이터 조작 논란으로도 유명합니다. 밀리컨이 기름방울의 전하가 기본 전하의 정수배에 해당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부분 전하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버렸다는, 다시 말해 자신의 주장에 맞는 데이터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쪽에서는 밀리컨의 행위가 실험 장치 세팅 후 데이터가 안정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온도 등 외부적 조건, 기름방울의 상태 및 모양 등 합리적인 기준을 통한 데이터 '선별'이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밀리컨의 실험이 데이터 조작의 영역인지 아닌지는 결론 내리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고요. 하지만, 실제 과학기술이 연구되고 실행되는 현장에서 데이터를 선별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가 '선별'이고 어디부터가 '선택'인지 판단하는 것은 실험을 진행하는 과학자의 몫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은 주관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합니다.


2011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싸인.

과학의 객관성과 함께 생각해봐야 할 것이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인생 드라마가 있으신가요? 제 인생드라마 중 하나가 2011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싸인'입니다. 과학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무슨 드라마 이야기냐고 당황하실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싸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법의학자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입니다. 극 중 배경이 되는 당시 국과수의 곳곳에 큼지막하게 걸려있으면서 극의 내용 전개에도 영향을 미치는 국과수 윤리헌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과학적 진실만을 추구한다"


이러한 국과수 윤리헌장이 보여주는 것처럼 과학은 ‘진실’, ‘사실’과 동반되는 개념으로 보편적으로 생각됩니다. 과학적 ‘진실’, 과학적 ‘사실’은 파괴력과 무게감을 갖고, 또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여지죠. 예를 들어, 테트로도톡신 1g을 섭취하면 인간은 사망합니다. 더 쉽게는 물은 100도씨에서 끓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합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위험사회론에 관심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별로 안 어려워요!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 사회의 우리는 예상치 못한, 확실하지 않은 과학의 사례도 종종 접하게 됩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들인 먹거리 위험, 방사능오염, 기후변화 등이 갖는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이들을 관통하는 특징은 복잡성과 불확실성입니다. 울리히벡은 이러한 특징들을 ‘위험사회’의 특징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벡의 위험사회론은 19세기의 근대화가 중세적인 사회구조를 해체하고 ‘산업사회’를 창출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근대화는 산업사회를 해체하고 새로운 근대성을 창출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 일차적 근대성으로부터의 이차적 근대성 이행이 위험사회론의 큰 틀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일차적 근대성은 ‘확실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데 반해 이차적 근대성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을 기반으로 합니다. 근대성과 함께 출발한 과학기술적 객관주의는 과학기술을 통해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그 복잡성으로 인해 결과를 유발하는 모든 과정이 한 데 얽히고설키면서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기조차 어려워졌습니다. 또한, 과학적 지식의 증가는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게 하는 측면 못지않게 우리가 모르는 것에 대한 성찰을 고도로 급진화시키면서 ‘불확실성’, ‘모호성’ 등에 대한 인식을 고양했습니다.


제롬 라베츠와 같은 학자들은 이를 두고 현대 과학이 '탈정상 과학'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분석합니다. 근대과학이라는 정상과학 시대에는 주어진 패러다임 안에서 확실한 과학적 사실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나, 앞선 여러 사례들을 접하면서 과학자들은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과학적 불확실성’의 국면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건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이해관계는 대단히 큰 이런 상황을 두고 탈정상 과학의 시대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에서 보여주는 과학기술의 내재적 한계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주목해 볼 것이 NASA의 발표입니다. NASA는 챌린저호 폭발 사건을 포함한 수차례의 과학기술 실패 사례를 거치면서 기술의 한계와 불확실성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합의와 대중의 의사결정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영국 광우병 및 GMO 생물 논란 사례와도 연결됩니다. 해당 사례에서 투명성과 개방성의 강조는 공중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보고서를 통해 과학적 자문에 기반한 정부의 과학 정책 결정에 대한 대중의 참여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이와 같이 현대의 과학기술에 대해 시민들의 참여 필요성을 강조하는 관점이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과학기술학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었고, 이보다 더 나아가 대중의 역할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중들의 참여나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요원해 보입니다. 현대의 과학기술의 분야는 너무나 다양하고, 교수도 옆방 교수가 어떤 연구를 하는지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세분화된 전문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갖고 보는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은 이해하기 어렵고 막연하고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뜨거운 과학기술 이야기'는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현재와 미래의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적 지식에 보다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인문사회학적 관점을 추가해 과학기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여정은 여러 가지 주요 테마 하에서 최신 과학기술 주제들에 대해 정리하고, 새롭게 개척되어가고 있는 분야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물론 연재하는 사이에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이 있으면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7개 분야에서 박사 학위가 있는 브루스 배너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과학기술의 과학적 원리나 전문지식을 세세하게 전부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뜨거운 과학기술 이야기'의 목표에도 어울리지 않고요. 대신 교양으로서의 과학기술 배경설명과 사회적 의미, 영향, 그리고 미래 전망 등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제 짧은 식견과 뛰어나지 않은 글솜씨, 과학 텍스트의 비주류성 등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우연히 이 글을 접해서 "아 뉴스에 나오던 이야기가 이거였구나! 별로 안 어렵고 재밌네. 조금 더 찾아볼까?"라고 생각해 주시는 분이 존재한다면 목표를 이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해를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