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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동산이 Nov 02. 2024

2장 3편 진辰 (1) #9

진辰에 이르렀던 무리들 (5/5)

조선-한 전쟁에서 한漢은 군사들을 2가지 길 통해 보냈습니다. 그 길들 가운데 하나는 땅을 지나는 길로 현재의 압록-강 하류의 북쪽 땅, 남쪽 땅을 지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를 지나는 길로 현재의 산동-반도의 북쪽 바다에서 동쪽으로 현재의 황해-도와 평안-도에 이르는 것입니다.


첫번째 길은 뒤에 요遼가 고려를 공격할 군사들을 보내는 데에 쓰였으며 보다 그 뒤에 후금後金 - 청淸이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보낸 군사들이 처음 차지하고서 지나간 길입니다. 한-반도에 대하여 땅으로 군사들을 보낼 때에 우선 쓰였던 길입니다.


두번째 길은 다시 2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현재의 산동-반도 북쪽 바다에서 먼저 북쪽으로 나아가서는 현재의 요동-반도 동남쪽 바다에서 이르러 물가[岸]를 따라[沿] 시계 방향으로 가서 현재의 평안-도, 황해-도에 이르는 입니다. 이른바 연안沿 항로라고 하는 물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산동-반도 북쪽 바다에서 쪽으로 나아가서 곧바로 바다를 가로로[橫] 질러가서[斷] 현재의 평안-도, 황해-도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른바 횡단橫斷 항로라고 하는 물길입니다.


다른 물길들로는 바다를 가로질러 현재의 한-반도 서쪽 물가로 이르는 물길이 있습니다. 세간에서는 이 물길을 신라가 열었다고 하기도 하고 백제가 열었다고 하기도 하는데, 어느 쪽도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물길은 앞서의 두 가지 물길과 달리 조선과 한韓 훨씬 뒤의 시기에 열려 쓰인 것이기에 그 시기의 일과 같이 이야기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제 사람들에 대해 살피는 데에 도움이 되는 앞의 두 물길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요.




돌아가서, 이러한 길들을 굳이 정리하여 이야기한 것은 그것들이 연, 조 사람들과 제齊 사람들이 조선에 이르면서 썼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연 사들 그리고 연에 이른 조 사람들은 첫번째 길을, 제 사람들은 두번째 길을 이용하였습니다.


연은 앞서 살폈듯이 앞서 현재의 청천-강의 북쪽 땅을 차지하고서 그곳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흐르는 현재의 구룡-강의 동쪽 땅, 서쪽 땅에 장장, 새塞를 짓고 대령-강 가까이의 만滿, 반-한[潘-汗]까지를 계界로 삼았습니다. 그 뒤에 진秦은 연이 계로 삼은 곳을 다시 차지하였는데, 이 때에 여기를 통해 연, 조의 사람들이 조선으로 들어던 것입니다.


반면에 제는 앞서 조선-후가 처음 조선-왕이라고 하는 시기보다도 앞서 현재의 요서 땅에서 예, 맥 사람들을 마주하였고 그 뒤 현재의 요동-반도의 남쪽 땅에서 발-조선[發-朝鮮] 곧 발을 따르고 있던 조선 사람들을 알고 물건을 주고받아 그들을 다스릴 것을 꾀하였습니다. 곧 보다 앞선 시기부터 이미 다른 길로 연안 항로 다니고 있었니 굳이 연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진이 일어났을 때에 제를 떠나 조선에 이르렀던 길이 이렇게 익숙하여 안전하였을 연안 항로였다면 수가 적을 까닭이 없습니다. 제 땅을 차지한 진秦이 어지러워졌을 때 스스로 일어나 왕이 되었던 전담은 강-씨에 이어 제를 다스리던 되었던 전-씨의 한 사람이기에 항로를 잘 알고 있었, 진이 보낸 군사들에 맞서기 위해 사람들을 필요로 하였던 제-왕이 되어서는 그곳을 통해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제 사람들이 제를 떠나서 조선으로 들어가기 위해, 연안 항로에 견주어 볼 때 가까이 의지할 땅 없이 긴 바다를 건너야 하기에 위험하여 사람들이 쓰려면 쓸 수는 있겠지만 쓸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지 않는 길을 통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썼던 길이 횡단 항로였으며 제 사람들은 이 길을 통해 조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이 이러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었음은, 앞서 자료들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후한서 순리열전은 한의 왕경이 바다에 배를 띄워 동쪽으로 가서 낙랑의 산들 가운데로 달아[2장 1편 C:⑱-⑳]적었으니, 왕경은 앞서의 제-왕과는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제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한漢의 제북-왕을 피하여 연안 항로 대신 이 길을 써서 낙랑으로 달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장 1편 C 후한서 순리열전: ① (왕경王景의 8세조世祖) (왕)중仲은 ② 본래 ③ 낭야(-군)[琅邪) 불기(-현)[不其] 사람이었다. ④ 도(-가)[道]의 재주[術]를 좋아하여 ⑤ 천문天文에 밝았다. ⑥ 여러 여(-씨)[呂]들이 ⑦ 어지러움을 지어내니, ⑧ 제齊 애-왕[哀-王] (유)양襄이 ⑨ 꾀하여 군사들을 뽑고 ⑩ 여러 차례 ⑪ (왕)중에게 물었다. ● 이윽고 ⑫ 제북-왕[濟北-王] (유)흥거興居가 ⑬ 등돌리고 ● 바라기를, ⑭ 군대[兵師]를 (왕)중에게 맡겼으면, 하였다. ⑮ (왕)중이 ● 두려워하기를, ⑯ 나쁜 일[禍]이 ⑰ 이르려는가[及], 라고 하고 ● 이어 ⑱ 바다에 배를 띄우고[浮] ⑲ 동쪽으로 가서 ⑳ 낙랑樂浪의 산들[山] 가운데로 달아았다. ● 이어 ㉑ (낙랑에) 가문을 이루었다[家]. ①仲②本③琅邪不其人④好道術⑤明天文⑥諸呂⑦作亂⑧齊哀王襄⑨謀發兵⑩而數⑪問於仲●及⑫濟北王興居⑬反●欲⑭委兵師仲⑮仲●懼⑯禍⑰及●乃⑱浮海⑲東⑳奔樂浪山中●因而㉑家焉




진秦 때에 제 사람들이 열었던 횡단 항로는 한漢 때에는 그 위험성 때문에 쓰이기 쉽지 않음을 노려 제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썼으니, 군사들이 상대가 생각하지 않은 곳[不意] 나아가도록[出] 하는 전략에 적절한 길입니다. 때문에 한은 조선-한 전쟁에서 한의 군사들이 지나올 것이라 생각하던 첫번째 길 뿐만 아니라 두번째 길로 군사들을 보내 뒤로 조선의 다른 땅을 치도록 하였니다.


이러한 군사들에 대해 사기 조선열전은  떠나 바다로  군사들 50,000명[2장 1편 A-(5):-④]었다고 적었고, 에 제 군사들 7,000명 양복이 거느렸다[2장 1편 A-(5):①-②]고 적고 있습니다. 곧 많은 수의 군사들을 바다를 건너며 잃었다는 것이니 이것을 통해 당시  군사들이 안전한 연안 항로 대신 위험한 횡단 항로를 이용하였음을 그 항로의 위험성과 함께 여주고 있습니다.


2장 1편 A-(5) 사기 조선열전: 그(= 원봉 02년) 가을 ● (무-제가) ①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을 보내니 ● (양복이) ② 제齊로부터 발-해[渤-海]에 (배들을) 띄웠는데[浮] ③ (배탄) 군사들이 ④ 50,000명[人]이었다. ⑤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가 ⑥ 요동(-군)[遼東]을 나와 ⑦ 우거右渠를 쳤다. 其秋●①遣樓船將軍楊僕●②從齊浮渤海③兵④五萬人⑤左將軍荀彘⑥出遼東⑦討右渠
2장 1편 A-(7) 사기 조선열전: (원봉 02년 가을) ① 누선-장군[樓船-將軍]은 ② 제齊 군사들 7,000명[人]을 거느렸고 ● (군사들이) ③ 앞서 나아가[先] ④ 왕험(-성)[王險](= 왕검-성)에 이르렀다. ⑤ 우거右渠가 ⑥ (왕검-)성城에서 ⑦ 지키며[守] ● 엿보아 알기를, ⑧ 누선(-장군)[樓船]의 군대[軍]가 ⑨ 적다, 고 하였다. ● 곧 ⑩ (왕검-)성을 나가 ⑪ 누선(-장군)을 쳤다. ⑫ 누선(-장군)의 군대가 ⑬ 패배하여 흩어져 달아났고 ⑭ (누선-)장군將軍 양복은 ⑮ 그 무리를 잃고 ⑯ 산山 가운데에 숨었다. (其秋)①樓船將軍②將齊兵七千人●③先至王險④右渠⑤城⑥守●窺知⑧樓船軍⑨少●卽⑩出城⑪擊樓船⑫樓船軍⑬敗散走⑭將軍楊僕⑮失其衆⑯遁山中


때문에 이 길로 조선에 이르렀던 제 사람들은, 다른 길로 조선에 이르렀던 연 사람들과 견주어 볼 때에, 길을 오고가는 것이 보다 어려웠던 만큼 그 수가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윽고 조선을 떠나 한韓에, 그리고 다시 진辰에 이르렀던 연, 제, 조 사람들 가운데에는 연 사람들이 제일 많고, 다음은 제 사람들이 많고, 조 사람들은 제일 적었으니, 그들이 전한 것들도 그러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진辰에 이른 뒤에 그 땅에 보태었던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진辰 사람들은 수가 적어 뒤에 온 사람들을 통해 그 땅에 본래 있던 사람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낙랑 사람들은 도리는 알아도 조선에 남았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쉽게 따르는 편이었기에, 그 뒤의 변화에는 다른 연, 제, 조 사람들이 그 가운데에서 연 사람들의 영향이 제일 크게 남겨졌습니다.




이것으로 2장 3편을 마무리합니다. 이제까지 진-왕[辰-王]이라는 호號에 대해 이야기하고, 진辰 사람들을 비롯하여 그 뒤로 그들이 머무는 땅에 들어온 여러 무리들, 진 사람들, 옛 조선 사람들, 낙랑 사람들, 그리고 연, 제, 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들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서로 다른 일을 겪고 그것을 이유로 조선에 이르게 되었는지 살폈습니다.


진辰에 대한 다음 이야기는 한참 뒤인 MC-68 즈음에 일어난 변화들 - 진-왕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변화들에 대해 다루게 될 것입니다. 앞서 다룬 바 진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자리잡았고, 어떤 까닭으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진-왕이라는 호를 가진 우두머리를 받들게 되었는지를, 진에 들어온 사람들이 겪은 옛 일들을 함께 살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다음 2장 4편부터는 잠시 시간을 되돌려 다른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서 부여라는 무리가 나타나기까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타난 부여라는 무리에 대해 살펴 이야기겠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다시 2장 2편의 한韓, 이번 2장 3편의 진辰의 다음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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