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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이야기

일상과 여행 그 어디쯤

사랑과 증오 그 어디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by 정현숙

장장 10일간의 긴 연휴였다.

나는 추석 당일인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간 당직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달처럼 둥글둥글 아무 일없이 무탈하기를 기대하고 고대했다.

모두들 사고 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만 보내기를 가능성 0%에 가까운 소망을 그래도 품어보았다.

그러나 여지없이 당직실에서 호출이 온다.


집이 있는 부산역을 출발하여 직장이 있는 경주역에 도착한다.

집을 떠나는 부산역도, 직장을 가기 위해 도착한 경주역도 들뜬 표정으로 오가는 수많은 여행객들로 그득그득하다.

내게는 감흥 없는 일상의 두 터전이 그 누군가에게는 설레는 여행 속의 풍경이 되는 이 아이러니.

여행은 장소의 개념이 아닌 떠남에 의미가 있음을 깊게 자각하게 된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사무실 불을 켜고 내 책상 위에 얌전한 척 살포시 엎어져있는 기록을 들춘다.

모두들 흥겨워하는 이 긴긴 연휴에 어떤 사연들을 품고 숨죽이고 있을까?


칼에 찔려 사망한 남자에 대한 부검영장.

아내는 자기가 찔렀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남편은 119가 올 때까지는 생존해 있었는데 본인이 스스로 찔렀다고 이야기했다지.

자살일지 살인일지를 판가름할 중요한 부검이 될 것같다.

돈, 돈이 원수이다.


임시조치.

아내를 폭행한 남편에게 접근금지 임시조치가 내려져 남편이 집에서 나갔는데, 다음날 아내가 들어오라고 하니 다시 들어갔다.

추석 긴긴 연휴가 무료해 바닷가에 놀러 갔다가 싸우고 아내가 바다에 빠졌다.

자살시도인지 실족인지 알 수 없다.


이상과 현실이 괴리의 연속이다.


내 일상의 터전은 누군가의 설레는 여행지.


즐겁고 행복한 수많은 이들 사이에서 미워하고 원망하고 다투다 죽어가는 사람들.


부부인지 원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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