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야 뭐야
나는 마흔한 살에 늦둥이 막내아들을 낳아 아들 셋 맘이 되었다. 그 아들들이 현재 초등, 중등, 고등학교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현장을 몸소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우리 집 막둥이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래서 50이 넘은 이 나이에도 아직 초등학교 학예회를 다니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요즘이야 워낙 만혼이 추세이다 보니 41살에 아이 낳는 것이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나, 친구들 중에서 초등학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보통은 자기 애 반의 발표회 모습만 보고는 나가기 십상인데 우리 막둥이 반이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발표를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다른 반 친구들이 발표하는 모습까지 모두 보게 되었다.
우리 집 꼬맹이도 그렇지만 4학년 정도된 인간이란 생물은 아주 독특했다.
뭔가 일사불란하게 촥촥촥 군무를 멋지게 해내면서도 아기스러운 귀여움이 살짝 장착되어 있다.
리코더 합주, 단체 응원군무, 크리스마스 핸드벨 공연, 소고춤 등등을 해내는 그 녀석들을 사랑스럽게 보고 있던 와중에 갑지가 콧등이 찡해지더니 급기야는 눈앞이 흐려졌다.
뭐지? 왜 이러지? 할머니도 아닌데 갑자기 웬 눈물바람이야? 싶은 것이 내심 참 당황스러웠다. 얼른 눈을 열심히 찡긋찡긋 해 눈물이 눈에 고이지 못하게 막아냈다.
당황스러웠다.
갱년긴가? 갱년기는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고 화가 단전밑에서부터 끓어오르고 뭐 그런 거 아닌가? 눈물이 갑자기 막 나는 것도 갱년기 증상인가?하긴 남자들은 갱년기 때 눈물이 난다고 하던데 남성호르몬이 과다해져서 남성갱년기를 겪는 것인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눈물바람에 피식 웃으며 혼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학예회를 마치고 아이의 반에 가서 준비해 간 작은 꽃다발도 주고 친구들과 사진도 찍어주려고 했건만 이 11살 생명체는 억지로 몇 번 사진에 찍혀 주시더니 엄마 그만 집에 가란다.
어찌나 센척하며 시크하게 명령하는지 어쩔 수 없이 애미만 교실문에 매달려서 애처롭게 안녕 열 번 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교정을 걸어 정문을 향하고 있는데 뒤에서 한 부부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내: 00이 너무 잘했지? 도대체 얼마나 연습한 걸까? 애들이 단체로 열심히 연습해서 함께 뭔가를 완성해 내니까 서로 배우는 것도 많을 것 같아.
남편: 맞아 맞아. 근데 아까 그 리코더 부는 반 진짜 잘하더라. 도대체 얼마나 연습했을까? 선생님도 참 대단하시다.
아내:00이 결혼할 때 오늘 영상 찍은 거랑 2학년 때 빨간 조끼 입고 춤추던 거랑 다 틀어줘야겠다
남편: 빨간 조끼 입고 엉덩이 흔들던 거 동영상이 있어? 진짜 재밌겠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조르르 뛰면서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남편이 "여보 왜 갑자기 뛰는데, 그래 구두 높은 거 신고 뛰다가 저번처럼 발목 나간다이~" 라며 달려가 아내의 손을 잡는다.
갑작스러운 그 상황에 또 눈물이 났다.
뭐지? 주책스런 이 눈물바람은? 눈물샘이 고장 났나? 안과를 가야 하나?
그 부부의 대화, 그 부부의 뒷모습
쪼르르 줄을 맞추어 최선을 다해 군무를 하는 아이들, 어떤 화려한 빤짝이 재킷보다 더 빛나던 아이들의 얼굴.
나는 매번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혼가정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늘 마음 아파했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하는 그 아이들.
또 늘 원수가 되어 서로를 헐뜯으며 죽이지 못해 안달이던 부부의 모습만을 보아왔다.
그런데 오늘 눈앞에 스트레이트로 펼쳐진 어여쁜 아이들의 모습과 다정한 부부의 모습에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먼저 반응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야 할 그 상황이 나에게는 참 생경한 모습이 되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눈물의 원인을 설명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젊은 부부를 붙잡고 차라도 한잔 사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다정하게 사냐고, 그 비결이 뭐냐고도 물어보고 싶었다.
안다. 나도 안다.
그들이라고 특별한 비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을. 그들도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서로에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그 부부의 짧은 대화를 통해 그들이 그들의 삶에 무엇을 제일로 소중히 여기는지, 그 비결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부부의 아이가 얼마나 빛이 날지도 말이다.
부부의 사랑은 남녀의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다. 그러한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인 사랑을 넘어선다.
부부는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아가 상대방으로 인하여 나의 부족이 채워지고 충만해진다.
물론 서로의 다름으로 인하여 상처받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고 그래서 힘든 적도, 의견의 충돌이 있은 적도 있었겠지만, 부부는 끝끝내 그것을 배척하지 않고 결국에는 그것이 그들을 더욱 성숙한 관계로 이끄는 견인차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아이들 학예회도 엄마와 아빠의 비율이 비슷하다. 부부가 함께 온다.
우리 첫째 둘째 때만 해도 엄마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남편이 뻘쭘해하던 기억이 있다.
이것부터도 너무 좋다.
부부가 함께 아이를 바라보는 것.
아이를 위해 엄마 아빠가 함께 손 흔들어 주는 것.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가 껑충 뛰며 기뻐하는 것.
그런데 한편으로 숨은 이면에 엄마 아빠가 올 수 없는 아이들의 서러움과 한숨이 또 마음에 걸린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이 걸리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1미리씩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