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아침을 밀린 빨래로 시작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땀이 나면 옷을 금방 갈아입었더니 캐리어에 곱게 접어온 빳빳했던 옷들이 어느새 눅눅한 빨랫감이 되어버렸다. 질기고도 튼튼한 면세점 쇼핑백에 옷을 가득 담아 따사로운 햇빛을 맞으며 근처 코인세탁방에 갔다. 지갑을 열어보니 잔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커피도 사고 잔돈도 바꿀 겸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알고 보니 브런치 맛집인지 사람이 많길래 시그니처 메뉴를 주문해 놓고 다시 세탁방으로 갔다. 바꿔온 동전들을 딸깍딸깍 금액에 맞춰 넣어주고 세탁코스를 돌린 후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매장 안은 이미 자리가 차있어서 야외 바에 자리했다. 미리 주문해 놓은 "마이 모닝"과 커피가 나와서 골목 구경을 하며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겼다. 재료가 신선하고 구성도 다양하고 양도 많았고, 무엇보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골목을 내다보며 식사를 하고 있으니 이 동네에 완연하게 스며든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왔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세탁방으로 돌아가서 세탁이 끝난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겨 넣고 건조코스를 돌렸다. 건조가 다 되길 기다리며 동네를 산책했다. 곳곳에 햇볕을 머금어 싱그럽게 반짝이는 이국적인 꽃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고 오니 건조가 끝나 있었다. 뜨거운 김을 폴폴 날리며 바삭바삭해진 옷들을 꺼내 차곡차곡 개서 다시 쇼핑백에 넣고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나와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올드시티 남쪽에 위치한 농부악 핫 퍼블릭 파크로 갔다. 생각보다 널찍한 공원을 여기저기 산책하며 구경을 했다. 공원은 한창 꽃축제 중이어서 곳곳이 색색으로 해사했고, 꽃과 어우러져 있는 곰돌이 조형물도 귀여움을 더했다.
공원 중앙 잔디밭에 여행객들이 일광욕을 하며 자유롭게 쉬고 있었다. 매점에서 매트를 대여해서 사람들 틈 그늘진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배낭을 베고 누워 유유자적 구름이 걸린 하늘과 우듬지를 바라보기도 하고, 멍하니 사람들 구경도 하며 신선놀음을 했다. 자꾸만 이동하는 해 위치 때문에 햇빛을 피해 조금씩 옆으로 옆으로 매트를 밀어 이동하며 그늘로 파고들었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도시락을 싸서 여기에서 하루종일 쉬어도 좋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이곳에서 무료 요가 클래스가 열린다 하는데, 시간이 늦어 참여를 못해본 게 아쉬웠다.
신선놀음도 배가 고프니 할게 못돼 돗자리를 반납하고 SP치킨으로 갔다. 태국식 숯불 닭구이인 까이양과 찰밥, 그리고 쏨땀과 시원한 레오맥주까지 주문했다. 찰밥은 알 수 없는 소스가 뿌려져 있어서 밥알이 잘 뭉쳐지지 않아 포크로 열심히 떠먹고 닭구이는 뼈 부분을 손으로 잡고 뜯어먹고 있는데, 반대편에 앉은 여행객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만 보고는 국적이 어딘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매우 특이한 식사법을 가지고 있었다. 알알이 부서지는 까만 소스가 묻은 끈적한 찰밥을 맨손으로 꾹꾹 눌러 모아서 입으로 가져가길래 '아 인도사람인가'하고 별 생각이 없이 닭을 다시 뜯으려 했다. 그런데 닭구이는 또 포크로 찍어먹는 것이 아닌가. 순간 게슈탈트 붕괴가 와서 닭다리를 들고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딘가 내가 모를 나라의 식사법이겠지'하고 시선을 거뒀다. 그와 나는 비슷한 속도로, 하지만 손과 포크의 쓰임새는 정반대인 채로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수선집이 있길래 냉큼 들어갔다. 3일 차에 산 나리야 에코백이 어깨에 메자마자 뚜둑 소리를 내더니 한쪽 끈이 풀려버렸던 것이었다. 박음질 상태 무엇...? 사장님에게 설명을 하니 시크하게 휙 받으셔서는 아무 말 없이 서랍에서 실을 하나씩 꺼내고 가방에 대보기를 몇 번, 비슷한 색깔의 실을 찾아 뚝딱뚝딱 솜씨 좋게 고쳐서 다시 시크하게 휙 돌려주셨다. (수선한 에코백은 바로 다음 대만여행에서 잃어버리고 만다.)
해자를 따라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북쪽에 다 달아서 길 건너편에 있는 공립도서관에 들어가 봤다. 당연하겠지만 국립도서관보다는 규모도 작고 장서도 적었다. 크지 않은 내부를 둘러보고, 그늘진 야외 테라스에서 책을 읽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목이 말라 다시 올드시티로 들어와 펀포레스트 카페로 갔다. 여기가 카페가 맞나 싶은 나무가 우거진 입구로 들어가면 넓은 정원 속에 있는 싱그러운 카페가 나타난다. 다행히 나무 그늘 아래 한 테이블이 비어있어 자리를 잡고 커피와 당근케이크를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보니 다들 코코넛 크림 케이크를 먹고 있길래 이게 시그니처구나, 아차 싶어 다시 주문을 정정하려고 손을 들었는데, 정말 음식이 빛의 속도로 나왔다. 주문한 지 1분도 안 됐는데 저 멀리 나를 향해 당근케이크를 가져오고 있는 종업원을 보고는 다시 손을 내렸다. 처음이니 잘 알지 못했고, 이런 작은 아쉬움들이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나를 다시 치앙마이로 이끌 것이다.
5시에 클룩 어플로 미리 예약해 놓은 파 란나 스파로 갔다. 시원한 웰컴티를 마시며 사전 질문지를 작성하고, 마사지사를 따라 마사지룸으로 갔다. 먼저 1층에서 정성스럽게 직접 발을 씻겨주고, 2층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전신 타이 마사지를 1시간 동안 받았다. 처음엔 시원하다 싶었는데, 특정부위들은 거의 고문 참기였다. 뭉친 근육을 풀러 온 거니까 조금 참아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쯤 more soft please, it's so strong이라고 했는데, 앞에 소프트는 못 듣고 스트롱만 들으셨는지 손길이 갑자기 더 스트롱해지는 바람에 비명을 내질렀다. 이제 알아들으셨는지 조금 더 소프트해진 적당한 압으로 남은 마사지를 시원하게 받았다. 마사지가 끝나고는 따뜻한 생강차와 쌀과자를 대접받았다. 시설도 마사지사 실력도 서비스도 아주 좋았다. 다음엔 아로마, 발마사지처럼 다양하게 받아봐도 좋을 것 같다.
저녁이 되어 노스게이트 재즈 코업으로 갔다. 아직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라 1층은 한산해서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며 기다렸다. 8시가 다가오자 여행자들이 몰려들어 1층과 2층은 물론 외부 도로변까지 인산인해가 되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라이브 공연을 듣고 있자니 흥이 나서 맥주가 절로 넘어갔다. 기대했던 것보다 공연 수준이 엄청 높았다. 기타리스트가 신들린 연주로 공연장의 열기를 돋우더니 정점은 색소폰이었다. 나는 색소폰이 올드하고 따분하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 공연을 보고 색소폰의 매력에 빠졌다. 폭포수처럼 미친 속도로 강렬하게 음정을 쏟아내는 색소폰 연주가 이어지자 절로 몸이 들썩거리고 곳곳에서 함성과 휘파람이 쏟아졌다. 클럽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괜히 혼자 가기 꺼려져서 여행 말미에 용기 내서 왔는데, 이런 퀄리티의 공연이 있는 라이브 바라는 걸 알았다면 무조건 1일 1재즈바했을건데 싶었다. 기타, 색소폰, 드럼 등 흥에 겨워 악기를 가지고 놀며 연주하는 연주자의 얼굴에서 짜릿한 행복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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