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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Sep 12. 2024

혼자서도 잘 지내네(10화)

혼자서 조용히 지내니 마음의 혼잡함이 가라앉았다. 혼란스럽고 동요되었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시는 가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일단은 마음을 놓이게 했다. 


고요한 아침, 혼자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다. 좋아하는 믹스커피 한 잔과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롭다. 거실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의 풍경들, 지나가는 사람들, 차들, 나뭇잎의 흔들거림, 흩어지는 구름들, 아주 오랜만에 보여지는 느껴지는 안락함, 평온함 속에 나만의 바랬던 평화를 느꼈다. 


혼자라는 자유로움, 아무에게도 간섭받지도 않고, 구속받지도 않고, 요구도 요청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안락함이 주는 행복감에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평정심이 유지되는 게 좋았다. 들쑥날쑥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는 요지경 같은 마음이 아니어서 좋았다. 하루종일 혼자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다는 생각에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었다. 


뾰족했었던 마음이 풀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1시 30분에 점심식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강요되었던 점심식사 11시 30분이 힘들었다. 아직 배도 고프지 않은데, 그리고 뱃속을 좀 비워두고 싶은 시간에 어르신들과 직원들의 눈치를 봐가면서 먹기 싫은데 먹어야 하는 것도 곤욕이었다. 점심식사를 안 먹고 그냥 지나가도 되고, 빵 한 조각으로 때워도 되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준비해서 나 혼자서 30분이든 1시간이든 느긋하게 먹어도 된다. 그런 자유로움이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만을 위한 점심식사,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시간도 행복감을 두 배로 만들어 주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그리고 내 마음이 왔다 갔다 나를 정신없게 만들지 않아서, 차분해질 수가 있어서, 내 모습을 다시 찾을 수가 있어서 나는 혼자라는 게 좋았다. 이제 나는 혼자다. 나를 내가 책임져야 되는 부담감, 책임감이 주는 무게감이 꼭 채무자처럼 나를 옥죄일 때가 있었다. 그 두려움에 무서울 때도 있었다. 결혼생활 몇십 년 만에 찾아온 나 혼자라는 삶이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는 그 씁쓰레함이 때로는 쓸쓸하고 외로울 수도 있는데 그 반면에 카카오초콜릿 맛처럼 뒤끝 단맛이 아이러니하게도 홀가분하고 자유스러웠다.


불쑥불쑥 갑자기 점심식사를 하고 휴식 시간에 집에 오는 남편 때문에 내 평화가 자잘근하게 깨지는 게 못마땅했다. 센터 이야기를 불쑥 꺼내서 또 다른 잡다한 볼일 때문에 나를 건드리는 게 아주 싫고 미웠다. 남편이 가고 난 다음에 나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분을 삭이느라 앉았다가 섰다가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내 마음을 한 곳에 두지 못하는 게 아주 싫었다. 내 평온과 평화, 질서를 깨뜨리는 남편에게 집에 올 때는 미리 연락을 하고 오라고 했다. 출근했으면 퇴근할 때까지는 문자도 카톡도 전화도 일체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었다. 나에게도 나만의 스케줄이 있으니, 본인은 본인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쏘아 됐었다.  


그가 퇴근을 하고 같이 저녁을 먹고 그러고 나면 나는 슬며시 안방으로 들어와서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검색을 하며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었다. 그는 궁금했나 보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그날은 침대에 앉아서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나를 내려다보며

"혼자서도 잘 지내네."

무심히 던진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퇴직하고 나면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 죽을 줄 알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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