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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측백 Jun 26. 2024

난 내 길을 가고 있었을까?

01. 누가 그랬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거라고.


이번해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다. 드디어 포기했는데 정작 취업을 다시 시작하려니 발아래 무스펙라는 두 글자가 너무나도 끔찍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를 못하겠다. 몇 년 동안 날려버린 시간들이 나를 겁쟁이로 만들어버렸나 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쯤이었나, 아버지의 사업이 커져갔다. 굴리는 돈은 늘어났고 앞만 보고 나아가는 배는 무슨 일이 펼쳐질지도 모른 채 비바람을 뚫어야만 했다. 그 험난한 과정 속에서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강조 아닌 강요를 시작했다. "공무원을 해라." 처음에는 싫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공부가 맞지 않는 머리에다 당시의 나는 그저 돈을 벌고 싶었다. 어릴 적 이미 빨간딱지라는 큰 구멍이 났었던 배의 상태를 알았기에 공부보다는 돈이 좋다는 생각이 컸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딱 한마디 하셨다. "그럼 인생 목표를 짜와 봐라." 순진한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렇게 아버지에게 드린 인생 목표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아직도 그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이러려고 니 대학 보낸 줄 아나." 

그리고 끔찍한 공시생의 나날이 펼쳐졌다. 


나도 알고 있다. 어른인데 부모님에게 반항을 한마디 못하냐고. 실은 후회하고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와서 저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되려 물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화가 나다 못해 눈물까지 났다. 하여튼 몇 년 전만 해도 아버지의 말은 법이었다. 그렇게 알고 자라왔다. 

아버지는 가정적인 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무서운 분이었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기억 하면 떠오르는 건 흔들리는 유치를 빼기 무서워 겁먹은 나에게 펜치를 들이밀던 순간, 어머니가 저녁 늦게 들어온다며 집 전화기를 부수던 뒷모습. 태풍을 뚫고 맥도널드를 먹여주셨던 그 손. 언제나 집에 오면 깊게 포옹해 주시던 따뜻함. 참 다채로운 분이시다.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셨다. 하지만 그 자식들이 여리디 여려 죽어 가는 것도 모른 채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했다. 밉냐고? 당연히 밉다. 호랑이는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을 하며 독설 뱉었던 말들이 쓰리도록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상처가 되었다. 지금도 생각하니 웃기다. 난 사람인데 왜 절벽에서 떨어져야 하지. 하지만 이 끝에 가장 미운 상대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나. 


첫 번째 시험에 70점대가 나왔었다. 나쁘지 않은 점수라며 이리저리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도전할만하단다.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때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나았을 것을. 노트북으로 강의를 듣고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다음 해 결과는 불합격. 점수는 올랐지만 정말 이 길이 아닌 것 같았다. 못하겠다고 말하자 부모님이 대답했다. "그래서 너 이거 안 하면 뭐 먹고살 건데." "9급 공무원도 합격 못하는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끔찍하게 자존감을 갉아먹는 말들이 찔러왔다.  몇 년간 내가 원하지 않는 공부는 이어졌다. 점수가 올라도 불안했고 숨이 막혔다. 거기에 더해지고 더해지는 불합격에 앞이 캄캄했다.


그러다 문득 시험장에서 내가 몇 년째 공부를 하는 거지 싶어 손가락을 접으며 울고만 싶었다.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의 행동이 바뀌셨다. 대학생 때까지 통금시간을 정해놓을 만큼 휘잡아 놓았으면서 "이제 너네 인생 살아라."라는 말을 뱉는 모습에 정신이 나갔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알고 있다. 어제와 오늘의 내가 다른 것처럼. 하지만 보수적인 유년기 시절을 걸쳐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돌이키기에 늦어 버린 이 나이가 돼서야 너희 알아서 하란다. 부모님을 미워하면서도 그래서 나는 정말 몰랐을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는 걸.


난 내 길을 가고 있었을까? 이번해 진심을 다했던 순간 빼고 선택하지 못한 것도 내 길이라면 내 길이겠지만 잘 모르겠다. 실패감과 자존감만 깎여 남은 게 없는 내가 새로운 길로 내가 직접 나아가려고 하니 참 겁이 난다. 그래서 이 글을 써 나갈 거다. 모니터 너머 모르는 사람들에게 약속하다 보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내 길? 내 길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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