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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의 혼불을 읽고, 남원을 읽다

by 글쓰는 워킹맘
바깥에 잔바람이 지나가는가. 문풍지가 더르르 울리더니 등잔불이 흔들린다. 자박 자박 자박. 정지에서 헛간 쪽으로 가는 발자국 소리가 불꼬리를 밟는다. - 최명희, <혼불> 중에서


경기도 베이비부머 인턴캠프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바로 시작한 일이 있다. 바로 최명희 선생님의 소설 <혼불> 읽기에 도전한 것이다. 오래전, <혼불> 1권은 읽었는데 총 10권짜리 긴 호흡을 이어가지 못했다. 남원을 제대로 알아가기 위해 <혼불> 읽기도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혼불>의 배경은 남원이다. <혼불>을 읽다 보면 남원이 내 고장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혼불>은 작가의 묘사하는 글이 참 아름답다. 그저 눈으로 글을 읽기만 해도, 눈앞에 광경이 선명히 펼쳐지는 것 같다. 작품에는 남원 사투리도 가득 담겨 있다. 전라도 사투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남원 사투리를 따라 하게 된다. 좀 더 찰지게 하고 싶긴 하지만, 그것까진 욕심이다.


"대실은 곡성서도 더 한챔이나 내리가는 전라남도 어디라등만, 어뜨케 갖고 왔간디 이렇게 식도 안했이까아?", "긍게 말이여, 아직도 음석이 따숩그만 그리여. - 최명희, <혼불> 중에서


긍게 말이여 = 그러니까 말이야. 이 추임새가 구수하고 정겨워 자꾸만 따라 했다. <혼불> 속에는 당시 남원 사람들의 일상과 말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기록이 없다면, 짐작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시대소설의 힘은 작지 않다. 남원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내게 <혼불>은 인생책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e01d92fb-b951-400d-9e63-cbdf1c2f7372.jpg 출처 : 남원시청 제공


어른 노릇처럼 어려운 게 어디 있겠느냐? 제대로 할라치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른 노릇이니라. - 최명희, <혼불> 중에서


남원을 공부하고, 남원에 살아보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제대로 된 '어른 노릇'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정한 어른이 얼마 없다고 말하는 청년들의 말을 듣고는 속이 뜨끔했다. 그저 나이만 먹는 '꼰대'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의지하고, 보고 배울 게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 베이비부머 인턴캠프에 참여하게 된 것도 어쩌면 나이와 욕을 동시에 먹는 사람보다는 나이는 먹지만 배울 게 많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혼불'이 목숨의 불, 정신의 불, 삶의 불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의 불이라고 했다. 남원에서 내 인생 2막이라는 삶의 불을 찾아낼 수 있을까? 단번에 찾긴 어려워도 남원에 정을 붙이고, 자꾸만 다가가려 하면 내 혼불의 작은 결이라도 잡을 수 있으려나.


요즘 나의 즐거움은 <혼불>을 읽으면서 남원이라는 곳을 읽고, 내 안의 혼불을 읽어내는 순간에 있다. <혼불>과 함께 남원에 스며들고 있나 보다. <혼불>의 마지막 10권까지 달려보겠다. 내 안의 혼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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