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 '꿈의 해석'
꿈이 심오한 의미를 지닌 별천지 세계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 어젯밤 꾼 꿈을 친구들에게 얘기하면서 별나고 엉뚱한 에피소드를 서로 경쟁하듯이 자랑하곤 했었죠. 꿈에 나온 인물, 이미지, 배경 전부 신비로운 광휘에 휩싸인 듯 놀랍게만 다가왔었습니다. 그때는 제 꿈이 할 말이 많아 보였습니다. 초현실주의,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처럼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선 뜻을 지닌 심오한 상징이었죠. 저와 제 친구들은 모두 해몽가였습니다. 각자 자신의 꿈을 되새김질해 보고 그 의미를 찾곤 했죠.
아, 동심이 파괴되는 순간은 기어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읽게 된 뇌과학 책에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꿈은 뇌의 무작위적 신호 처리 과정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여분 이미지일 뿐, 무언가 심오한 지혜와 연결되는 통로는 결코 아니다.'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꿈의 상징적 의미와 깊이를 분석하는 일에 재미를 두고 지내오던 참인데, 우리의 과학자들이 곧바로 여기에 훼방을 놓은 거죠. 그날 이후로는 꿈에 관해 흥미를 급속도로 잃어갔습니다. 아무리 기상천외한 해프닝으로 풍성한 꿈을 꿔도 그저 콧방귀만 뀌고 말았죠.
사실 꿈은 상당히 까탈스러운 친구입니다. 자기한테 관심을 잘 기울여주지 않으면 토라져서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물기를 거부합니다. 분명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매력으로 넘치는 꿈이었는데 잠에서 깨어나고 난 이후에는 어렴풋한 인상도 제대로 남지 않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마치 꿈이 제 뇌의 기억 배선 회로에 각인되길 주체적으로 거부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런 식으로 고등학생 이후 꿈과 권태기를 가진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불과 며칠 전 꿨던 꿈은 이런 오랜 권태기를 깨부술 만큼 강렬했습니다. 어느 암살자에게 쫓기는 꿈이었습니다. 둔기를 들고 복면을 쓴 건장한 사람에게 온종일 추격을 당하는데 지나치리만치 생생한 탓에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요 전체가 흠뻑 젖어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악몽을 꾸는 건 예삿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의 꿈은 특히 제 뇌리에서 벗어나길 거부한 채 저의 의식에 뿌리 깊게 각인이 되었습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저의 전용 비서인 "Mr. Gpt"에게 조언을 구해보았습니다. 꿈에 관한 동심을 회복해도 될지, 상징적 의미를 깊게 파보아도 될는지 말이죠.
위처럼 긍정적인 답변을 받게 되었고, 여기에 용기를 얻어 꿈과 새로 로맨틱한 관계를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꿈에 구애 공세를 펼치는 것이죠. 저만의 구애 방식은 이렇습니다. 연인에게 러브레터를 쓰듯이, 꿈을 꾸고 난 이후에는 곧바로 메모장에 자세하게 꿈의 플롯과 스토리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아, 휴대폰이나 노트북이 아닌 오직 연필이나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며 기록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저는 그럴 때야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계속 기록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꿈이 경계를 풀고 저에게 마음을 푸는 날이 올 겁니다. 그때면 꿈이 스스로의 신비를 개방하겠죠.
꿈과 다시 사이를 회복하는 와중에 얼마 전에 꾸었던 살인마 꿈을 재해석했습니다. 여러분이 보셨을 때는 제대로 해석한 것일까요? 저는 주로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관점을 참조해서 풀이해 보았습니다.
일단 살인마는 융이 이야기했던 그림자(shadow)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융의 그림자 개념은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스스로의 부정적인 면, 두려움, 또는 억압된 본능의 집합체(complex)입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의 압박감이 만들어낸 심상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저는 취업이라는 새로운 불확실성과 갈수록 늘어가는 나이에 대한 압박에 기진한 상태라, 억눌린 심리가 살인마라는 상징적 존재로 제 꿈에 등장한 것입니다. 살인마에게 쫓기는 '저'는 의식적 자아를 나타내며, 살인마는 무의식적으로 억눌린 그림자 측면을 상징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화해하지 못했기에 무의식이 자신을 알아달라고 극단적인 살인마의 이미지로 저를 방문한 것이죠. 아직도 제 의식적 측면은 어두운 무의식을 대면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 가능합니다.
카를 융이라면 아마 이 꿈이 저의 행동 패턴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라고 진단했겠죠. 융은 꿈을 단순히 해소되지 않은 불안과 두려움만 반영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꿈을 통해 무의식이 말을 건다고 믿었습니다. 즉,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찰을 제공하려는 시도인 것이죠. 제가 모르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두려움과 약점,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더 나아가 '통합'시켜야 한다고 말이죠. 직업에서의 적응, 나이로 인한 두려움을 넘어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의 두려움과 직면하고, 회피하지 않고 대화를 시도하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살인마는 제가 단순히 꽁지 빠지게 도망칠 대상이 아니라 직면해야 할 존재입니다. 이번 꿈이 그토록 기억에 남고 매혹적이었던 건 내면의 강인함을 깨우기 위한 초대장인 탓일 수 있습니다. 수백만 년의 세월 동안 축적된 인간 종(種)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 저에게 건네는 조언인 셈이죠. (상담료가 무료인 공짜 정신분석?)
나름대로 야매(?) 꿈의 해석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제 해석을 융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무덤에서 박차고 나와 제 뺨을 후려갈길 수도 있겠죠. 어디서 약을 파냐고요. 그럼에도 제 나름대로 성찰을 이끌어내게끔 도와준 것은 바로 융 당신이니 너무 퉁명스럽게 받아들이지는 말아 주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