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짐이 오래갔으면
새해가 밝은지 벌써 일주일도 지났습니다. 올해도 참 시간 빨리 지나가겠구나 생각도 들면서, 지난 일주일 간 얼마나 성실히 지냈는지 점검도 하게 됩니다. 매번 맞이하는 새로운 한 해, 후회 많던 작년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누차 다짐합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관성의 작용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듯 보입니다. 이전 삶의 궤적이 만들어 낸 습관의 덫이 또다시 동일한 지점에서 주저앉게끔 만들곤 합니다. 전진한다고 여겼지만, 같은 자리를 원을 그리며 맴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많습니다.
고루하다고 욕을 먹을 수 있지만, 저는 이럴 때마다 옛 고전에 나오는 성현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자주 부당하게 비난받았지만 사대부적 수신(修身) 문화는 현대인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입니다. 딸깍발이 선비님네가 호롱불에 의지한 채 읽었던 책이죠? 사서삼경(四書三經) 중《대학(大學)》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나라 걸왕을 무너뜨리고 상(商) 왕조를 개창한 탕왕(湯王)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군주가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번민하던 중, 동녘 하늘에서 햇덩이가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탕왕은 감탄합니다. "많은 날 해돋이를 보았지만 저 해는 지난날의 해가 아니구나! 완전히 새로운 해가 뜨는구나!" 일견 평범한 이 사실에 영감을 받은 탕왕은 커다란 구리 세숫대야(盤)를 갖고 와서는 구절 하나를 새깁니다.
진실로 하루라도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탕왕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세수하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새로워져야 한다고, 저 태양이 매번 새로이 변모하듯 나도 거듭나야 한다고 말이죠. 탕왕은 얼굴을 단장하는 그 짧은 시간도 아까워 스스로를 채찍질했나 봅니다. 종래의 생활에 안주하려는 타성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매일 아침 곱씹었을 그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실천적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더 나은 사람으로 매일 변화할 수 있을까요? 이 대목에서도 고전을 통해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답은 '시간 관리'입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6년 7월 1일 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천년의 긴 세월은 일각(一刻)의 틀리지 아니함에서 비롯하고,
모든 공적의 빛남은 촌음(寸陰)을 헛되게 하지 아니하는 데에 말미암는다
(千歲之致, 始於一刻之不差; 庶績之熙, 由於寸陰之無曠)
위 기록에서 촌음무광(寸陰無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촌음(寸陰)은 아주 짧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무광(無曠)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고요. 쉽게 설명하자면 1분도 허투루 하지 말라는 일갈입니다. 이 단어가 저를 사정없이 찔렀는데요. 돌아보니 제 삶의 허다한 순간들이 무연히 흘러갔더군요. 유튜브 숏츠, 인스타 릴스에 푹 빠져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불필요한 술자리와 유흥에 날린 시간은 또 어떻고요. 헬스장에 가겠다고 다짐해놓고 귀찮다며 이불 속에 뒹굴거리길 선택한 순간도..... 이런 사소한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삶을 실천하면 몰라보게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저라는 사람을 바꿀 테니까요. 탕왕이 나날이 새로워지길 원했던 것처럼 부단한 자기갱신의 사이클을 만드는 겁니다.
옛 고전에서 탕왕을 인용하며 끊임없는 자기 변화와 성찰을 강조했다는 건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비슷한 뉘앙스의 다른 이야기도 소개하고 싶네요. 혹시 '오상아(吾喪我)'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내가(吾) 나를(我) 장사 지낸다(喪)는 뜻입니다. 듣자니 아리송하죠? 이 엉뚱한 말의 출처는 《장자》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만났는데 스승의 모습이 이전과는 무척 달라져 있었습니다. 놀란 제자에게 스승은 말합니다. "나는 나를 장례 치러주었단다" 이전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탈바꿈했다는 걸 드라마틱하게 강조한 것입니다. 장자는 기존의 관념과 습관에 젖은 종래의 자기(我)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자기(吾)를 맞이하라고 우리를 등 떠밉니다.
아마 장자가 저를 봤다면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지었을 겁니다. 항상 기존의 패턴에 고착되어 변화를 거부해 왔었거든요. 시간 귀한 줄 모르고 방치하고, 편안한 길만 고집하지 말라는 주변의 조언을 한사코 외면했습니다. 옳은 지적임을 알기에 되려 마주하기가 두려웠죠.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회피라고 하던가요. 끝없는 도망침의 결말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한 것 없는 제 자신이었습니다. 거울을 보며 통렬하게 되뇌곤 했죠. "이번에는 달라질 거라고 했잖아! 왜 그러는 거야? 항상 제자리잖아!"
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입니다. 직역하자면 푸른 뱀의 해라고 합니다. 먼 옛날부터, 뱀은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탓에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의미해 왔습니다. 그 뜻을 따라 올해는 저만의 껍질을 벗고자 합니다. 예년처럼 등을 보이고 도망치며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으렵니다. 언젠가 지인들이 저를 보고 이렇게 말하길 바랍니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네?" 그때 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