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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새롭게

새해 다짐이 오래갔으면

by 탱귤도령


download.jpeg 낙산사도(洛山寺圖, 1788) - 김홍도(金弘道), 낙산사에서 바라본 일출


새해가 밝은지 벌써 일주일도 지났습니다. 올해도 참 시간 빨리 지나가겠구나 생각도 들면서, 지난 일주일 간 얼마나 성실히 지냈는지 점검도 하게 됩니다. 매번 맞이하는 새로운 한 해, 후회 많던 작년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누차 다짐합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관성의 작용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듯 보입니다. 이전 삶의 궤적이 만들어 낸 습관의 덫이 또다시 동일한 지점에서 주저앉게끔 만들곤 합니다. 전진한다고 여겼지만, 같은 자리를 원을 그리며 맴도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많습니다.


고루하다고 욕을 먹을 수 있지만, 저는 이럴 때마다 옛 고전에 나오는 성현의 가르침을 떠올립니다. 자주 부당하게 비난받았지만 사대부적 수신(修身) 문화는 현대인에게도 유효한 가르침입니다. 딸깍발이 선비님네가 호롱불에 의지한 채 읽었던 책이죠? 사서삼경(四書三經) 중《대학(大學)》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하나라 걸왕을 무너뜨리고 상(商) 왕조를 개창한 탕왕(湯王)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군주가 되었지만 어떻게 해야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지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밤을 새우며 번민하던 중, 동녘 하늘에서 햇덩이가 솟아오르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탕왕은 감탄합니다. "많은 날 해돋이를 보았지만 저 해는 지난날의 해가 아니구나! 완전히 새로운 해가 뜨는구나!" 일견 평범한 이 사실에 영감을 받은 탕왕은 커다란 구리 세숫대야(盤)를 갖고 와서는 구절 하나를 새깁니다.


진실로 하루라도 새로워지려면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탕왕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세수하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새로워져야 한다고, 저 태양이 매번 새로이 변모하듯 나도 거듭나야 한다고 말이죠. 탕왕은 얼굴을 단장하는 그 짧은 시간도 아까워 스스로를 채찍질했나 봅니다. 종래의 생활에 안주하려는 타성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매일 아침 곱씹었을 그를 생각합니다.



L20060315.22024213500i1.jpg 위명육선생산수책(爲鳴六先生山水冊) - 석도(石濤·1642~1718)




그렇다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실천적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더 나은 사람으로 매일 변화할 수 있을까요? 이 대목에서도 고전을 통해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답은 '시간 관리'입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16년 7월 1일 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천년의 긴 세월은 일각(一刻)의 틀리지 아니함에서 비롯하고,
모든 공적의 빛남은 촌음(寸陰)을 헛되게 하지 아니하는 데에 말미암는다
(千歲之致, 始於一刻之不差; 庶績之熙, 由於寸陰之無曠)



위 기록에서 촌음무광(寸陰無曠)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촌음(寸陰)은 아주 짧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무광(無曠)은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고요. 쉽게 설명하자면 1분도 허투루 하지 말라는 일갈입니다. 이 단어가 저를 사정없이 찔렀는데요. 돌아보니 제 삶의 허다한 순간들이 무연히 흘러갔더군요. 유튜브 숏츠, 인스타 릴스에 푹 빠져서 밤을 새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불필요한 술자리와 유흥에 날린 시간은 또 어떻고요. 헬스장에 가겠다고 다짐해놓고 귀찮다며 이불 속에 뒹굴거리길 선택한 순간도..... 이런 사소한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는 삶을 실천하면 몰라보게 성장한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저라는 사람을 바꿀 테니까요. 탕왕이 나날이 새로워지길 원했던 것처럼 부단한 자기갱신의 사이클을 만드는 겁니다.








채색산수도.jpg 채색산수도(彩色山水圖) - 마원(馬遠, 1160~1225)



옛 고전에서 탕왕을 인용하며 끊임없는 자기 변화와 성찰을 강조했다는 건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비슷한 뉘앙스의 다른 이야기도 소개하고 싶네요. 혹시 '오상아(吾喪我)'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내가(吾) 나를(我) 장사 지낸다(喪)는 뜻입니다. 듣자니 아리송하죠? 이 엉뚱한 말의 출처는 《장자》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만났는데 스승의 모습이 이전과는 무척 달라져 있었습니다. 놀란 제자에게 스승은 말합니다. "나는 나를 장례 치러주었단다" 이전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탈바꿈했다는 걸 드라마틱하게 강조한 것입니다. 장자는 기존의 관념과 습관에 젖은 종래의 자기(我)를 죽이고 새롭게 태어난 자기(吾)를 맞이하라고 우리를 등 떠밉니다.


아마 장자가 저를 봤다면 고개를 이리저리 가로지었을 겁니다. 항상 기존의 패턴에 고착되어 변화를 거부해 왔었거든요. 시간 귀한 줄 모르고 방치하고, 편안한 길만 고집하지 말라는 주변의 조언을 한사코 외면했습니다. 옳은 지적임을 알기에 되려 마주하기가 두려웠죠. 삶의 반대말은 죽음이 아니라 회피라고 하던가요. 끝없는 도망침의 결말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한 것 없는 제 자신이었습니다. 거울을 보며 통렬하게 되뇌곤 했죠. "이번에는 달라질 거라고 했잖아! 왜 그러는 거야? 항상 제자리잖아!"


자, 새해가 밝았습니다. 2025년은 을사년(乙巳年)입니다. 직역하자면 푸른 뱀의 해라고 합니다. 먼 옛날부터, 뱀은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탓에 새로운 시작과 변화를 의미해 왔습니다. 그 뜻을 따라 올해는 저만의 껍질을 벗고자 합니다. 예년처럼 등을 보이고 도망치며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으렵니다. 언젠가 지인들이 저를 보고 이렇게 말하길 바랍니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네?" 그때 저는 살포시 미소 지으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겠죠.




"그야 당연하지. 나는 나를 장사 지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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