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μῆνιν ἄειδε θεὰ)"
- 호메로스, 《일리아스》
전쟁은 나도 모르는 사이 지척에 와 있었다. 군에 입대하기 불과 두어 달 전, 살얼음판을 걷는 듯 숨 막히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미군 수뇌부에서 북한에 선제 폭격을 고려한다는 언질이 흘러나왔고, 북한도 강경 노선을 굽히지 않았다. 언제고 국지적인 도발이나 충돌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국제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하루하루 다가오는 입대날짜를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렸다. 제발 내가 군인일 때 전쟁이 터지지 않기를, 총구를 들어 타인의 심장을 겨누는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하늘이 보우하사, 동아시아의 정세는 큰 변고 없이 흘러갔다. 하지만 직접 몸으로 경험한 군 생활은 나의 뇌리에 '전쟁'이라는 단어를 낙인처럼 새기기에 충분했다. 폭우 쏟아지는 훈련의 어느 날에 판초 우의를 뒤집어쓰고 서있노라면, 발목까지 차오르는 흙탕물의 서늘한 온도가 온몸을 파고들었다. 군장을 헐레벌떡 챙겨 치장물자를 낑낑대며 옮기는 훈련의 반복. 나는 전쟁이 벌어진다면 죽음에 못지않은 지긋지긋한 고생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군 생활의 애환을 달래려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집어 들었다. 소설 속 병사들은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참호전 속에서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해 나간다. 그들은 묻는다. "도대체 우리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정치인들이 직접 글러브를 끼고 싸우면 안 되나?" 나도 훈련의 나날에 되물었다. 대체 전쟁은 왜 있어야 하며, 국가는 어떻게 나에게 ‘목숨을 내던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의문은 지난 몇 달간 국내 정치동향을 보면서 다시금 나의 의식에 떠올랐다. 대통령과 그 동조세력이 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군사적 충돌을 유도했다는, 믿기 힘든 정황들이 드러났다. 나는 수년 전의 두려움이 재발해 몸을 덜덜 떨어야 했다. 그들 덕에 나는 다시 심각한 존재론적 공포 상태와 마주했다. 우리의 소중한 일상이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을 만큼 허약하다는 깨달음. 몇몇 엘리트의 욕심으로 인해 전쟁이 언제고 죽음의 사자처럼 찾아올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고는 씁쓰레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 아무리 "전쟁은 정치의 연장"(클라우제비츠)이라 했지만, 이건 도 넘게 비열하고 우습지 않나?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전 세계를 휩쓴 68 혁명과 히피 운동은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를 노래했다. 파리의 대학부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존 레논은 상상해 보라고 부추긴다. "국가도, 전쟁도 없는 세상을." 에드윈 스타의 <War>(1970)라는 노래는 묻는다. 전쟁이 대체 무엇에 쓸모가 있냐고. 그는 답한다. 전쟁은 단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눈물일 뿐이라고, 순수성의 파괴로 점철된 추악한 행동들의 연속이다. 전쟁은 백해무익하고 문명의 파괴자일 따름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게 진실의 전부일까?
애석하지만 역사학은 사뭇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학자 아자 가트(Azar Gat)는 《문명과 전쟁(War In Human Civilization)》에서 주장한다. 오히려 전쟁이야말로 평화와 문명의 아버지였다고 말이다. 전쟁은 끔찍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전쟁을 통해 더 크고 조직화된 권력이 만들어졌고, 그 권력이 내부의 평화를 강제하면서 문명이 번성할 수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이언 모리스도 《전쟁의 역설(War! What Is It Good For?)》에서 비슷한 견해를 펼친다.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국가와 문명 형성 과정의 핵심은 군사력과 전쟁이었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평화'도 엄밀히 말하자면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부산물이라는 역설이다.
국제정치 현실주의 학자들의 의견도 참조할 만하다. 그들은 이야기한다. 전쟁은 국제정치의 구조적 조건 아래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말이다. 국가 안에서는 경찰과 법이 폭력을 통제하지만, 국제사회에는 그런 상위권력이 없다. 각 국가는 홉스적 상황, 즉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敵)인 항구적 투쟁에 내몰려있다. 한마디로 말해 국제사회는 '무정부적 상태'이다. 이런 가혹한 현실에서 각 국가는 스스로 힘을 기르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 근데 우습게도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게 안보 딜레마라고 불리는 구조적 문제이다. 한 마디로, 국제 시스템 자체가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 전쟁은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현실이 되고 만다. 인간 개인의 악의가 아닌 세상의 구조 자체가 비극을 강제하는 것이다.
"전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라는 이론적 결론이, 역사의 틈바구니 아래 희생되는 생명들의 아우성을 무시하게 만들진 못한다. 몇 년 전 신문기사에서 우연히 읽게 된 러시아 동원병 비탈리 탁타쇼프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2018년 결혼해 두 살배기 아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군에 끌려갔다. 그는 전장에 투입된 후 매일 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우리도 살인하지 않고 그들도 우리를 죽이지 않길 바란다." 그는 아내를 향해서도 메시지를 전했다. "정말 사랑한다. 당신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라고. 결국 그는 차디찬 주검으로 전장에 버려졌다. 나는 탁타쇼프가 아내에게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편지를 꾹꾹 눌러 담아 썼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차마 가늠조차 못한다. 아무리 구조적 요인과 이성의 논리로 무장해도 무참히 짓밟힌 개인의 역사를 배제할 수가 없다.
탁타쇼프의 이야기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요즘 전쟁에 대한 과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전 세계적인 거대한 전쟁의 참화가 곧 밀어닥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러모로 현재 국제정세를 볼 때 2차 세계대전 이전 1930년대의 데자뷔를 느낀다. 세상은 또다시 파괴와 화염의 아수라장으로 치달아가는가? 수십 년 뒤 역사학자들이 작금의 세계를 역사의 어느 국면과 비교할까? 1939년의 폴란드일까 아니면 1962년의 쿠바일까? 역사의 격랑 속에 하릴없이 휩쓸린 소시민으로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나는 두렵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전쟁에 끌려가 삶이 영영 끝나버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한다. 물론 비합리적인 기우임을 알지만,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져다주는 무게감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수 세기 전, 임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론(Zum Ewigen Frieden)》(1795)에서 “모든 국가는 공화정을 채택하고, 자발적인 국가연맹을 통해 국제법에 근거한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사실에 기반해 모든 인간은 '보편적 환대'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일갈했다. 공화정을 채택한 국가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서로의 존재를 승인하는 한, 전쟁은 점차 옛 유물로 변모해 갈 것이라고 칸트는 믿었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칸트의 기획을 자양분 삼아 좀 더 급진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영원한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손을 맞잡고 국경과 군사력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상호 신뢰와 자발적 결단의 윤리적 원칙에 따라 안보의 포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정말이지 고매하고 이상적으로 들린다.
칸트와 가라타니의 아이디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역사학자와 정치학자가 말하는 '전쟁의 필연성'은 탄탄한 근거가 있다. 그럼에도 평화를 향한 노력을 포기하고 체념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언젠가 세계가 국경을 철폐하고, 하나의 공동체로 연대해 전쟁을 극복하는 순간이 올지 어느 누가 알겠는가. 수백 년 전 전제군주정에 살던 사람들이 민주정을 상상할 수 없었듯이 우리의 상상력도 작금의 현실 너머를 보기는 어렵다.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유토피아는 종착지가 아니라 이정표"라고 말했다. 우리가 생전 평화로운 지구 공동체를 실제로 볼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그 방향으로 비틀거리면서라도 조금씩 나아가려는 분투 자체가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전쟁에 무릎 꿇지 않으려면, 칸트와 가라타니가 제시한 '영원한 평화의 꿈'을 순진한 몽상으로 치부하지 말고, 그들을 이정표 삼아 한 발자욱씩 내디뎌야 한다고-누군가는 비웃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남의 가슴을 밟고 싶지 않아. 너와 함께 있고 싶었어. 그저 함께 있고 싶었어. (...) 행운을 빌어줘. 이 들판에 남겨지지 않도록"
- 키노(Кино),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1988)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