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 무상, 무주를 통해 본 본래 마음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그 생각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생각이 우리를 번뇌와 고통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오늘은 모든 것을 초월한 평화, 즉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육조 혜능 대사와 마조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육조 혜능 대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나의 이 법문은 옛 조사들로부터 내려오면서 먼저 무념을 세워서 종지로 삼고, 무상을 세워서 본체로 삼으며, 그리고 무주를 세워서 근본으로 삼는다. 무상이란 상에서 상을 여의는 것이고, 무념이란 생각에서 생각이 없는 것이며, 무주란 사람의 본성을 이른다."
1. '무념(無念)' – 생각 너머의 평화
육조 혜능 대사는 **'생각에서 생각이 없는 것'**을 무념이라고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지만, 이는 모든 생각을 멈추라는 것이 아닙니다. 외부의 대상이나 조건에 끄달려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분별하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의미입니다. 마조 스님도 "마음과 경계를 확실히 알면 망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이것이 곧 무생법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본래의 마음, 즉 진여심(眞如心)은 하루 종일 수많은 생각(생멸심)이 일어나고 사라져도 언제나 여여(如如) 하여 한 생각도 일으킨 바가 없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해도 본심에서는 본래의 청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지요. 육조 스님은 이 본심을 '무념'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순간순간 일어나는 생각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이 무념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모든 괴로움이 일거에 사라질 것입니다. 결국 모든 감정은 생각의 산물이며, 생각은 그저 인연에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2. '무상(無相)' – 진실이 아닌 것을 보지 않는 지혜
무상이란 '상에서 상을 여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상(相)'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인식하는 모든 현상, 즉 형상을 뜻합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실체가 없이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허상에 집착하여 실체화하고, 그로 인해 주관과 객관을 나누며 '나'라는 허상, 즉 자아를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그저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3. '무주(無住)' – 머무르지 않는 자유로운 삶
무주는 '사람의 본성'을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순리대로 무심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은 항상 텅 비어 있어서 사물이 오는 대로 선명하게 비치고, 그에 따라 적절히 반응하게 됩니다. 소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는 무위(無爲)의 삶, 즉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 사는 삶입니다.
무주(無住)의 경지에서는 무엇보다 대상에 집착하는 망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일어남'은 왜 발생하는가? 그것은 밖으로 무엇인가를 구하고, 무엇인가에 머무르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집착과 구함을 내려놓고 머무름 없이 살아갈 때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찾아옵니다.
깊은 깨달음의 가르침을 나눌 때에도 우리는 '무주'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려는 마음이 자칫 '나의 분별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자기를 버리고, 가르침의 대상까지도 기꺼이 끌어안는 데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가며 더불어 깨우쳐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육조 스님의 무주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본래의 마음은 언제나 맑고 고요합니다. 그 위에 덧씌워진 생각과 상과 집착을 걷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나를 발견하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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