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구름 먹 구름, 만 리 하늘에 드리운 구름
살면서 문득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마음의 평화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오래된 지혜의 말씀은 우리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곤 합니다. 오늘은 바로 그 지혜의 한 조각, 『보조국사 수심결(修心訣)』에 나오는 아름다운 구절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천 개의 강에 물이 가득하니, 천 개의 강마다 달이 비친다!'
'천 개의 강'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 다양한 존재, 혹은 개개인의 마음을 비유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뿐이지만, 이 땅의 모든 강에 달이 비치는 것처럼, 진리(달)는 하나이되 각자의 근기(강물)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중생들의 다양한 근기와 바람에 맞추어 여러 보신불과 화신불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와 현상이 다양하게 펼쳐져 보이더라도, 그 근원에는 변치 않는 하나의 진리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치 아무리 많은 강물에 비추어도 본래의 달은 하나이듯이 말입니다.
각 강물은 '자기만의' 달을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결국 '같은' 하나의 달입니다.
이는 곧 세상의 모든 다채로움과 다양한 모든 개별적인 것들이 사실은 보편적인 하나의 진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각기 다른 삶과 모습 속에서도 우리는 모두 진리의 한 부분임을 잔잔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만 리나 되는 넓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니, 그 만 리 전체가 맑은 하늘 그 자체이다'
이는 우리의 마음을 만 리 하늘에 비유합니다.
마음속을 가득 채운 온갖 분별심과 애착, 번뇌라는 '구름'이 걷히고 사라지면, 그 자리에는 본래부터 청정하고 광대했던 마음의 본성, 즉 맑은 하늘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가르침입니다. 어떤 인위적인 노력 없이도, 마음의 번뇌만 내려놓으면 본래의 참된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의 메시지이지요.
만 리 하늘의 구름이 걷히듯 번뇌를 여읜 청정한 마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천 개의 강에 달이 비치듯 모든 것이 진리 그대로 드러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차례 맑은 마음의 하늘에, 흰 구름 같은 생각들과 먹구름 같은 생각들이 오고 갑니다. 흰 구름, 먹구름 모두 걷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히 드러나는 본래의 맑은 하늘인데…
그 찰나의 평화를 얻기가 이토록 어렵습니다. 생각을 애써 떠올리는 일보다,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구름 같은 상념들을 온전히 내려놓기란 어찌 이리 버거운 일일까요?
애써 외면하려 해도, 끈질기게 불쑥불쑥 머리를 디밀고 나오는 생각들. 때로는 깊은 밤, 잠결에도 불현듯 생각 하나가 쏙~ 비집고 나오기도 합니다.
번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온통 가리고 지나간 뒤, 비로소 그 자리에 고요히 남아있는 평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흔히 외부의 소음에 휘둘려 내면의 평화를 잊곤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상념이 걷히고 나면, 우리 안에는 본연의 맑고 고요함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렸을지라도 그 뒤에는 언제나 푸르고 맑은 하늘이 존재하듯이,
지치고 버거웠던 순간들 속에서도, 먹구름 뒤에 숨어 있는 본연의 맑은 마음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맑은 하늘 아래, '오롯이 집착 없이 드러나는 한 생각'을 낚아채라!
진정으로 생각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상념들에 휩쓸리지 않고, 맑은 의식 속에서 순간적으로 빛나는 영감을 낚아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 길어 올린 생각들이야말로 어떠한 외부의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됩니다.
무수히 스쳐 가는 정보와 상념 속에서, 본연의 맑은 의식이 선사하는 순수한 통찰력이야말로 외부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가려낼 수 있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시끄러움 속에서도 참된 고요함을 얻고, 번뇌의 한복판에서도 깨달음은 피어날 것입니다.
천 개의 강물 위에 천 개의 달이 비쳐도, 본래 달은 단 하나이듯, 수많은 번뇌가 다양한 모습으로 마음을 흔들지라도, 본연의 마음 하나 밝히면 모든 것이 하나의 맑고 고요한 우리의 본래 마음으로 귀결되는 이치 말입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마음의 본성을 발견하고, 모든 존재와 연결된 하나의 진리를 깨달아,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지혜를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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