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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허 우일허(日日虛又日虛)

by 하늘미소 함옥녀

말은 기술, 침묵은 지혜


침묵은 긴 세월 동안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 걸린다"라는 말처럼, 진정한 침묵은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닌, 깊은 내면의 성찰과 자아의 성장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입니다.


행운은 직관의 속삭임, 영감은 침묵 속에서 들려옵니다. 그것은 소리 없는 속삭임, 자신의 내면에 조용히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침묵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학생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교수님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간결하게 대답했습니다. "입을 적게 움직이고 머리를 많이 움직이게."


말이 많을수록 본심과는 멀어지고, 생각은 얕아지기 쉽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깨달음과 깊은 통찰은 고요한 성찰과 침묵의 시간 속에서 피어납니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침묵의 가치를 삶 속에 깊이 들여놓는 지혜를 기르십시오.



매일을 거듭하며 비워내는 연습

'일일허 우일허(日日虛又日虛)'


텅 비우는 연습은 매일을 거듭하며 비워내는 일입니다. 노자는 이를 '일일허 우일허(日日虛又日虛)'라고 표현했습니다. 매일 비우고 또 비워내는 과정 속에서 고요가 찾아오고,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참된 자아를 만나게 됩니다. 비움은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의 공간이 됩니다.


노자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도(道)'입니다. 그는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이 도(道)는 우리가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습니다. 도에는 어떠한 빛깔도, 어떠한 소리도, 어떠한 형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이 형체 없는 '도'로부터 비롯되며, 도는 시간적·공간적 경계 없이 스스로 존재합니다.


이 무한한 존재를 노자는 무극(無極)이라 표현하며, 무극은 단순한 '비어 있음'이 아닌 모든 생명을 탄생시키는 근원이라 보았습니다.


그는 '무(無)'의 본질을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합니다. "수레바퀴는 바큇살이 중심을 이루지만, 중심이 비어 있기에 수레가 움직일 수 있고, 찰흙으로 만든 그릇은 그 빈 공간이 있기에 쓰일 수 있습니다. 방에 문과 창이 뚫려야 우리가 방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형체 있는 '유(有)'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선 '무(無)'가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기에 쓰일 수 있다는 이 통찰은, 삶에서 비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노자의 삶의 방식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그는 다음 세 가지 덕목을 통해 삶을 설명합니다.


1. 소박함: 덕이 두터운 사람은 갓난아기와 같아 독이 있는 벌레도 물지 않고, 사나운 짐승과 새도 그를 해치려 들지 않습니다. 반면, 억지로 자신을 드러내고 마음의 기운을 부려 무언가를 이루려 하는 사람은 억지스러운 삶을 꾸려가기 십상입니다. 소박함 속에서 진정한 강함과 평온이 깃듭니다.


2. 유연함: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습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으며, 낮은 자리에 머무릅니다. 부드러운 물이 견고한 바위를 뚫는 것처럼,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깁니다. 노자는 물과 같이 살아가는 삶, 이웃에게 선을 베풀며 이익을 안겨주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 자를 지혜롭다고 여깁니다.


3. 무위의 실천(無爲自然):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억지를 피하고 자연스럽게 행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억지로 자기의 키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 발끝으로 꼿꼿이 선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마음이 급하여 두 다리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하며, 스스로 나타내려는 사람은 도리어 드러나지 못한다"라고 노자는 말합니다.


또한 그는 무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분별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복과 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기대며 순환합니다. 복이 있으면 그 안에 화가 깃들 수 있고, 재앙은 복을 품고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구분하려 하지 말고,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크게 이룬 것(大成)은 모자란 것 같으나 그 쓰임새에 그침이 없고, 크게 찬 것은 빈 것 같으나 그 쓰임에 다함이 없다." 노자의 이 말은 비움과 충만함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철학자 하이데거가 즐겨 애송했다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은 깊은 사유를 선사합니다.


”熟能濁以靜之徐清(숙능탁이정지서청)

熟能安以動之徐生(숙능안이동지서생)

누가 능히 혼탁함을 고요히 해서 서서히 맑아지게 할 것인가.

누가 능히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 서서히 살아나게 할 것인가."


마치 흙탕물이 가만히 두면 저절로 맑아지듯이, 고요 속에서 우리의 혼탁한 마음을 잠재우고 스스로 정화될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비움과 침묵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무위(無爲)'와 '무욕(無慾)'의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내세우거나 집착하지 않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행하되, 가르치려 들지 않고

만물이 이루어지되, 말꼬리를 달지 않으며

낳아 주되, 갖지 않으며

되게 해주되, 그렇다고 믿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다.


"행하되 가르치려 들지 않고" 이것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되, 강요하거나 상대를 훈계하려 하지 않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말없이 본보기를 보이거나, 상대를 존중하며 스스로 깨닫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배려임을 말해줍니다.


"만물이 이루어지되 말꼬리를 달지 않으며" 어떤 일이 성취되었을 때, 자신의 공을 내세우거나, 이래저래 간섭하려 들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뜻합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는 담담한 마음가짐이지요.


"낳아 주되 갖지 않으며" 무언가를 시작하고 창조했더라도,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지만, 자식이 부모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세상의 모든 존재를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존중하는 큰 사랑을 보여줍니다.


"되게 해주되 그렇다고 믿지 않으며" 어떤 존재나 일이 스스로 이루어지도록 돕지만,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조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공을 이루고도 연연하지 않는다..." 큰 성과나 명예를 얻었더라도, 그에 얽매이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미련 없이 흘려보내는 초연한 태도를 말합니다.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정신을 뜻하는 것이지요.


결국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자신을 낮추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유하려 하지 않는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깊은 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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