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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홀려버린, 영국 자연사 박물관

by 근아

오전의 일정은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겐 오전 시간을 잠시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러스트 전시회를 볼 예정이었기에, 사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움이 온전히 집중되지 않을 듯 했다.


하지만, 자연사박물관의 건물을 마주한 순간, 이런 건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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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이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어떤 모습일까. 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선다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아무리 나의 상상력을 무한으로 펼쳐보아도 그 모습은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건물로 다가가기 전,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박물관 앞의 정원이었다. 그 순간 '영국은 자연을 이렇게 대하고 있구나.' 눈에 보이는 자연뿐만 아니라, 물속의, 땅속의 자연까지도 소리로 건네주었다. 겉으로 드러난 풍경을 넘어 보이지 않는 생명까지 이어진 결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건물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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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자연사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이자, 영국 과학 문화의 상징이라 한다. 많은 박물관들이 전시품을 단순히 보여주는 공간에 머문다면, 이곳은 건물 자체가 자연사의 시간과 흐름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 했다. 나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건물 곳곳에 새겨진 선들과 곡선, 결들의 흐름을 따라 자연의 진화가 걸어온 길을 조용히 따라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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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또 하나의 세계로 넘어온 듯 했다. 나는 전시품보다 먼저, 이 공간 전체가 품고 있는 자연의 언어를 읽고 있었다. 마치 건물이 스스로 말을 건네는 듯했다. 나는 그저 건물의 흐름을 따라 걸으며 어디선가 이어져 오는 시간의 숨결, 지구가 지나온 오랜 세월과 생명의 층위를 경험하고 있었다. 마치 화석의 층층 사이로 직접 들어가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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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평생 경험하지 못했을 어떤 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내 앞에 어떠 일이 펼쳐질도 알 수 없는 채 걸어가는 이 공간에서 나는 오히려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의 자연이 여전히 이곳을 흐르며 현대의 사람들을 감싸 안고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건축가의 의도였을까.

아니면,

시간이 건물에 새겨놓은

또 다른 우연의 결이었을까.


이 묘한 감정을 품에 안고,

나는 오후 일정으로 조용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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