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인문학 공부 끝에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삶 속에서, 일상의 경험을 통해 인문학을 배워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나의 경험들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기에,
그것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투명한 인문학'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지나면서도 무지했던 것이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보고도 그것이 다이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나치는 사람처럼,
잘 자란 산삼을 보면서도 그저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로 여기고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늘 그 곁을 지나고 있었으면서도,
내 삶 속에 놓여 있던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문학을 배우며
이전의 경험 속에서 무엇이 없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의 경험'들은 말 그대로 '경험', 혹은 '사건'에 가까웠다.
그저 내가 실제로 해보거나, 겪어보는 일이었을 뿐이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는 것
매일을 살아가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사회 속에서 도전하는 것
살아가고, 배우고, 부딪히고, 적응하는
그런 행위로만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의 나는 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만을 묻고 있었고,
그 뒤에 숨어 있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지금,
내가 말하는 '요즘의 경험'은
바로 그 후자의 질문에 닿아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도, 그 이유도 찾게 되었으며,
나의 삶은 이미 그 방향을 향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자연의 대법칙에 따라 성장하는 것 (주)
삶의 방향이 선(善)을 향하고 있다는 것
나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이제는
이전의 경험이
다이아몬드가 되고, 산삼이 되는 그 순간을
나는 인문학과 철학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다.
책에서는 항상 '실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장들을 읽는 순간마다
나는 이미 그 '실천'을 살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 철학적 실천은
이미 나의 이전의 경험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실천이란 생각했던 바를 실제로 행하는 것.
그것은 이미 나의 삶 속에 경험에 담겨 있었다.
경험, 그저 내가 실제로 해보거나, 겪어보는 일.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본 것
매일을 살아낸 것
부딪히고, 적응하고, 배우고, 관찰한 것
그러니 나는,
삶을 먼저 살아낸 뒤,
책을 읽으며 뒤늦게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의 경험이 하나의 '점'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 점을 이어
하나의 '선'을 그리고 있다.
그 선은 우연이 아니었다.
흐름이었고, 방향이었으며,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이끌어오고 있던
자연의 보이지 않는 질서였다.
나는 그동안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름 붙이지 못했고,
그 흐름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보인다.
이 모든 경험의 방향이 자연의 대법칙을 향하고 있었고,
나의 삶 또한 그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선(善)을 향해 흐르고 있다
인문학은 나를 새로운 길로 데려간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걷고 있던 길을 비로소 바라보게 해 준
하나의 '눈'이었다.
다시 말해, 인문학, 철학 책은 나에게 길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걷고 있던 길을 의식하게 해 준 존재였다.
나는 이제,
나의 삶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식을 실천을 하는 순간을 넘어,
'경험'이 지식이 되는 순간이다.
(주) 내가 말하는 자연의 법칙은, ‘정해진 공식’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생명과 흐름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방향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