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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책 세 권이 알려준 흐름

by 근아

한국에 온 이후, 가장 먼저 외출한 곳은 교보문고였다.

아들의 학용품을 사야 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 나는 책이 필요했다.


한국에 오면 바로 책을 사겠다는 마음으로, 호주에서 달랑 책 한 권만 들고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어선 서점에서 우연하게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원래 사려던 인문서를 찾을 수 없었기에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살펴보게 되었다.

<세네카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


책장을 몇 장 넘겨보며 들었던 생각은 아주 간단하지만 분명했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정말 재미있겠다."

책장을 넘길수록 서로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듯한, 이미 대화가 오가는 듯한 감각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책이다!! 싶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며칠째 이 책에 깊이 빠져있다.


내 안에 어느 정도 확고하게 자리 잡은 생각들,

'이런 방향이 아닐까?'하고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

며칠 동안 풀지 못해 맴돌던 고민들,

그리고

북클럽을 진행하며 매일 나누던 이야기들까지...

모든 것들이 이 책 안에 한 번에 정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나의 사상과 철학이

이 책의 내용과 거의 완벽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이어졌다.


인문학을 2년간 공부하며 북클럽에서 여러 책을 추천받았지만, 내가 꾸준하게 손에서 놓지 않는 책들은 단 두 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내 인생책'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세 번째 책을 이렇게 만나며, 내 철학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소로우 - 에머슨 - 세네카


내가 읽은 책의 순서는 반대였지만, 이 세 사람의 결은 하나로 이어진다. 에머슨은 세네카의 영향을 받았고, 에머슨은 소로우의 스승이자 동반자였다.


세네카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도

바로 소로우와 에머슨이었다. 그들의 사상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보면,

세네카가 뿌리를 놓고,

에머슨이 줄기를 만들며,

소로우가 그 위에 삶이라는 잎을 피운 셈이다.


나는 지금 이 세 사람의 흐름 속을 아주 천천히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남긴 사유의 자연 속에서 내 사유도 그 길 위에서 하나의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


수천 년의 시간차를 둔 세 사상가의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한 줄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경이롭다.


그들의 질문이 내 질문이 되고,

그들의 사유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나의 방향이 되는 것.


철학은 결국 '전해진 것'이며,

나는 지금 그 긴 흐름 속 한가운데에서

나의 다음 장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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