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행의 마지막날.
숙소 체크아웃을 하기 전,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걸으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며칠 전부터 마음에 맴돌던 한 곳이 있었다.
계속 가고 싶어 했지만, 여러 이유로 끝내 가지 못한 곳,
the Design Museum
이 날만큼은 그 미련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나 혼자 잠깐 그곳에 다녀오겠다'라고 선포를 했다. 이기적인 행동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럼 그곳에 다 같이 가자'... 그렇게 그들은 예상 밖의 동행자가 되어주었다.
10여분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도착한 뮤지움은 생각보다 작았고, 외관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모습과 달라서 괜히 가족들을 데려온 건 아닐까, 작게나마 미안한 마음이 스칠 정도였다.
하지만, 뮤지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미안함은 순식간에 뿌듯함으로 바뀌었다. 겉에서 본 평범한 모습과 달리, 내부는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세계가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나는 그 공간을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으로 밀려왔다. 사실, 이곳은 내가 호주에서 디자인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수많은 리포트와 프로젝트를 위해 끝없이 조사하며 화면 속 이미지로만 들여다보던 곳이었다. 그렇게 오랫 바라만 보던 장소를 지금, 실제로 두 발로 서서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그 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그 장면에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겹쳐지자, 내 안에서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벅참이 천천히 올라왔다.
뮤지엄을 빠르게 둘러보는 동안에,
내 시선이 머무는 지점은 늘 같았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운 디자인의 영역은 여전히 그래픽,
그중에서도 글자를 품은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그 디자인들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떤 아름다움을을 더할 수 있을까?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고 디자인을 다시 바라보면,
디자인은 결국 한 가지 결론으로 돌아온다.
디자인은 ‘사람을 위한 배려의 형태’이다.
그 배려는 거창한 혁신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작은 불편을 줄이고,
사람의 하루에 아주 작은 미소 하나를 더해주는 데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마음
그 마음이 모여
하나의 형태가 되고,
하나의 언어가 되고,
하나의 디자인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중심에는
언제나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
결국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