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돈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어릴 땐 종종 하곤 했었다.
어른들이 왜 돈, 돈 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마음이 중하지 돈이 중하나 라는 생각을 가졌던 젊은 시절의 나였지만 이제는 세상의 때가 탄 것인지, 아니면 지혜로워진 것인지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몇 주간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부모님과 집공사로 인해 시댁에서 먹고 자고 하며 결국엔 서로 넘으면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원래 매우 깐깐했던 시어머니와 상명하복의 원칙으로 살아온 시아버지와의 한 집살이는 사실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 나에게 쏟아내신 시어머니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행동을 해도 아들은 피를 나눈 사이니 미워 보이지 않았는가 섭섭했고, 나에게만 쏟아지는 지적은 나를 지치게 했다. 하루는 출근해서, 잘 지내고 있어? 라 묻는 동료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 화장실로 급히 피신을 하기도 했다. 시아버지는 애초부터 우리가 얹혀사는 기간을 신병교육기간처럼 생각하고,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고치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아이가 둘인 40대 부부는 나름 중년의 나이에 남의 집에 얹혀산다는 이유로 어린아이처럼 밥상에서 매번 혼났다.
지난 주말에는 출근하는 나에게 시부모님이 아침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크게 화를 냈는데 그 이후로 이를 악 물고 6시에 기상해 매일 아침을 차렸다. 남의 집 사는 사람이 맞춰야지 어쩌겠나.
지금까지 마음에 박힌 상처는 고작 한 달을 살면서 수 없이 많아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지만, 하나하나 다 언급을 하자면 너덜너덜했던 마음이 아예 바스러져 버릴까 쓰지 않기로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나를 마음으로 낳아 준 엄마.
지난번 한국에 갔을 때 필요할 때 쓰라며 나에게 돈을 쥐어준 엄마가 그간 있었던 일을 듣더니 말했다.
시집살이 엔간히 시키네. 그 집에서 당장 나와. 내가 그때 준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준거야. 당장 나와서 다른 집 찾아서 들어가.
8700킬로 떨어진 엄마의 온기가 핸드폰을 타고 느껴지는 것 같아 나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목놓아 울었다. 나도 가족이 있고, 나도 내 편 들어주는 엄마가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덜 슬퍼졌다. 그리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돈 때문에 꾹꾹 참고 있었던 나에게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엄마가 해 주었다.
처음부터 시댁에 들어가지 말걸.
엄마가 준 돈 아끼느라 시댁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바라는 건 내가 시댁에서 고생하며 지내지 않는 거였다니.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결정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혹은 이유 없이 까이지 않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숨 막혀가는 나를 구한 건, 시댁의 따듯한 가족사랑이 아니라 엄마가 한 푼 한 푼 모아 나에게 준 엄마의 돈이었다.
엄마의 돈은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시댁의 거실보다 훨씬 따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