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이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을 갖는 사치를 누리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중에서)
키워드- 엄마, 집밥
키워드- 인생의 타임라인 중 마음을 나누는 사치의 시간을 함께하길
“아직도 고모는 집에서 밥을 하세요?”
이런 당돌하고 뼈 때리는 말을 듣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남동생이 지난 추석에 형제들끼리 식사 한번 하자고 시간을 물어보았다. 추석 명절 전도 아니고 전전날에 말이다. 명절 제사를 지내니 내가 집에서 음식을 한다니 무슨 번거롭게 그러냐며 가까운 근처로 약속 장소를 정하였다. 당일, 휴일임에도 부암동의 맛집이라는 풍문 덕인지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벼 긴 대기 줄을 서야 했다. 만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설도 아니고 추석에 만두라니,’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웃으며 식사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차는 우리 집에 가서라고 말하기 무섭게 또 남동생이 힘들게 무슨 집에서라고 하며 근처 카페로 인솔하였다. 명절날은 일정이 바쁜 듯 다들 명절 잘 보내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조카가 약속이 근처에 있다고 남겠다 한다. 약속 시간까지 멀었는데 카페에 있느니 고모네 집에서 있다가 가도 좋다 하니 기특하게도 따라나섰다.
자주 왕래가 없던 조카를 집에 데려다 놓고 여동생이 어색한 분위기를 살리려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애쓴다.
조카는 MZ세대답게 정말 얼굴 보고는 못 할 당돌한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하였다.
몇 가지 하였으되 가고 나서도 몇 날을 머리에 감도는 화두가 바로 이 질문 “고모는 아직도 집에서 밥을 하세요?”이다.
자기네는 집에서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가 언제까지 요리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밥은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를 시대에 뒤처진 한 물간 유물을 보듯 신기해한다. 예전에 남동생에게 김치를 담갔다고 가져가라 하면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거절한 이유가 이것인가 보다. 그때는 줄 것이 김치밖에 없는 자신이 초라하고 서운했다.
다과를 감과 약과로 내놓는데 무색하여 슬쩍 아이들 좋아하는 과자를 상에 올렸다.
삼시세끼, 언니네를 시청하면 맛있겠다고 입맛을 다시는 사람, 어디를 가든 허기가 느껴질 때 혼자서는 뭐라도 입에 넣는 것이 부끄러워 간식거리를 넉넉하게 가방에 넣어 다니며 나눠 먹는 촌스러운 사람, 동생들의 안부를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지” 하고 물어보고 집밥을 차리는 촌스러운 사람,
언젠가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하다”라고 했더니 지인이 그럴 땐 삼겹살에 상추를 듬뿍 싸서 먹으면 치유된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기름이 위를 감싸 속을 꽉 채운 것인지 효과는 직방이어서 주변에도 전파한 비법이다. 그래서 때로 속이 헛헛할 때 혼자서도 삼겹살을 상추에 쌈 사먹고 치킨을 시켜 마음을 달래보는 나는 지독히도 촌스러운 아줌마이다.
조카의 말에 불현듯 예전에 읽었던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칼자국」이 생각나 다시 읽었다.
「칼자국」은 소설집 『침이 고인다.』 에 수록된 단편인데 무능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억척스럽게 살아온 어머니를 그렸다.
작가의 소설은 지나간 날들의 기억도 향수처럼 그립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25년 넘게 써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칼자국」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끝내 엄마가 그리워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빛바랜 사진첩 속에 나와 쌍둥이처럼 닮은 엄마,
“소싯적 내가 얼마나 이쁘고 인기가 많았는지….”라고 이야기하시던 쾌활했던 엄마,
삶이 사람의 모습도 만들 듯 엄마는 살다 보니 또순이가 되어 4남매를 키워오셨으리라. 우리를 살리느라 초라하게 변한 엄마, ‘젊은 시절의 엄마 또한 나처럼 삶의 무게에 고뇌하며 살았겠지?’하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저 어미가 되어 살았던 엄마, 그 엄마가 그립다.
하루하루가 지칠 때, 몸이 아플 때, 생일날 아침, 나는 그 어미가 참 많이 보고 싶다.
오래전 병원 대기실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지내느라 일 년 넘게 살림을 놓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먹는 것도 잊고 그냥 숨만 쉬고 버티었다. 그래서 내 새끼를 돌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딸이 임파선결핵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놀란 마음에 정신을 번쩍 차린 나는 딸을 위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칼을 잡았다. 자식을 위해 인내하며 살았던 엄마처럼 나도 어미가 되어 살고자 했다. 어떤 걸 먹여야 면역력이 강해지는지 매일 고민하고 재료를 사고 다듬고 달이고 그러는 속에 마음은 회복되어 갔다.
내 새끼에게 칼자국이 잔뜩 난 음식을 먹이고 살찌우며 어미 된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그것은 살아갈 힘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결국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고 생명에 살 힘을 주는 칼자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들이 엄마가 그리워지는 날 큰 누나라는 나무 그늘이 필요한 날도 있겠지?
그때 엄마의 짬밥이 그립다는 남동생을 위해 돼지고기 숭덕숭덕 썰어 칼자국 새긴 김치찌개를 끓일 것이다. 위로받기를 바라는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따뜻한 밥 한 끼에 담을 것이다.
그리고 좀 촌스럽더라도 한 끼 밥을 권하는 나의 가치관을 지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