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대신, 타고난 성향 인정하기
아이를 출산 한 이후 내 아이를 품에 안은 그 순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이를 바라보며,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라고 꿈꿨다. 아이가 점점 자라서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주변의 친구들을 보며 내 아이가 가지지 않은 그들의 장점들이 마구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로, 부족한 내 아이의 단점이 부각이 되면서,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은 주변으로부터 변하기 시작했고, 점점 아이의 타고난 성향을 인정하지 못했다.
덜렁대다 못해 늘 필통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주의가 산만해서 연필과 지우개는 늘 바닥에 굴러 떨어지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는 건 그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때마다 주변에는 늘 아이와 반대 성향의 아이인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가 함께 있었다. 자연스럽게, 자기 물건을 잘 챙기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착착 자기 할 일과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나도 누구한테 비교당하기를 싫어하고, 나의 갈 길을 가는 편이라서, 아이한테 입 밖으로 주변 친구들과 비교를 직접적으로 해본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품고 있었다.
타고난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겉보기에 활동적이고 호기심이 왕성하지만, 육아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사회성'의 부분에서 우리 아이는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같이 어울려 노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굳이 자기가 싫어하는 걸, 친구들이 원한다고 해서 하는 편도 아니었고, 누가 먼저 놀자고 손을 내밀면 다가가지만, 먼저 상대에게 '우리 놀자'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않는, 전형적인 내향적인 아이이다.
아이 탓을 할 수 없는 게 부모 역시 내향적인 사람이고, 남편은 회사 생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회사 밖 외향형 인간이지만, 우리 모두 바깥 활동 외에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각자의 개인 시간이 필수인 내향형 가족들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의 사회성 문제가 걱정이 되기도 해서, 일부러 친구들하고 놀려도 보고, 우리 집에 초대해서 친구들과 시간을 갖게도 했지만, 그건 엄마 주도의 놀이였지, 아이가 스스로 자기의 내향적 틀을 깨고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물론 아이는 누구보다 즐겁게, 푹 빠져서 그 시간을 즐기기는 했다.
중국에 온 뒤로도 아이가 학교에서는 새로운 친구들하고도 곧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내 눈에는 마치 군중 속 고독을 느끼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늘 주변에는 함께 노는 친구들이 있지만, 학교 생활이 끝나면, 더 이상의 관계를 아이 스스로는 만들지는 못했다. 아이 친구들로부터 수많은 play date와 sleep-over를 경험했지만, 정작 우리가 초대를 한 적은 지금까지도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단지 근처에 또래 친구들도 많아 보이고, 하하 호호 깔깔거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늘 아이한테 "너랑 나이 비슷한 것 같은데? 한 번 어울려봐."라며, 나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회성을 은근히 강요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아이는 늘 더 과장해서, "나보다 나이 한참 어려(혹은 많아)." 하며 선을 그었고, 심지어 정말 친하지 않은 친구면 지나가다 만나도 어색하게 인사하는 게 다였다.
또, 늘 아이가 단정하고 바른 모습이길 바라서, 옷매무새도 챙겨주고, 질질 풀린 운동화끈을 내 삐걱대는 무릎을 꿇어가며 예쁘게 리본을 매 주고서야 안심하는 '그를 위해 준비된 엄마'였다. 덜렁대고 칠칠치 못한 모습이 참 보기 불편했다. 그러다가, 국제학교에서 친한 외국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 스스로 깨닫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미국계 독일인 친구가 몇 번 우리 집에 놀러 오게 되었다. 우리 집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살면서 희한하게 우리 집에 늘 오고 싶어 하는 아이의 첫 진한 외국 친구였다. 친구 관계에서 그들만의 공통점으로 한 학기가 지난 어느 날, 둘만의 느낌이 통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의 엄마는 얇은 입술과 살짝 올라간 갈매기 눈썹라인이 상당히 깐깐하고 도도해 보이는 엄마였다. 또 아들은 귀공자 같은 느낌의 바르게 자란 곧디 곧은 품성의 훈남 아이였다.
그런데 늘 그 친구의 운동화를 보면, 끈이 풀어헤쳐져 있다. 아이가 그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도 엄마가 둘의 뒷모습을 찍어서 보내 준 사진에도, 그 친구 운동화의 끈은 풀어져 있다. 가방 외에 짐이 여러 개여도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가 저 모습을 보고도 그대로 두다니.'라고 생각했던 나는, 나중에 그 친구 엄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을 때 알게 되었다.
세 자녀를 우애 좋게 키우는데 한 몫한 서로 비교하지 않기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각자의 나이에 알맞은 해야 할 일을 부과해 주기였다. 가장 어린 5살 동생조차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자신의 역할이 있었고, 또 집안일을 해주는 아이(Ayi)가 있어도, 뺄래를 개 놓은 자신의 옷들은 스스로 정리하게 했다. 대신 아이들의 나이에 상관없이 각자에게 무한한 사랑 표현을 참 많이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아이가 중국을 떠나며 이삿짐을 정리하던 날, 아들은 그 집에 가서 하루 자고 놀고 오게 되었다. 아들이 다녀와서 내게, "엄마 D가 그러는데, 황급히 종이들을 버리면서, 엄마가 공부하라고 준 건데, 그거 다 안 했대. 엄마가 알면 혼난다고 다 버리더라." 아이의 다급한 얼굴이 떠오르면서도, 아이의 문제집을 칼같이 확인하려고 했던, 아이한테는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었을 수도 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년 말에 성적 우수자 상을 받고 중국을 떠났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공부 방식이 있고, 아이가 내가 원하는 공부 방법대로 하지 않더라도, 기회를 줄 뿐, 부모가 남들과 비교하며 아이의 사생활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전체적인 틀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초대를 받은 후에, 나도 그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해서 하루 자는 sleepover를 계획했다. 그 나이 또래면, 누구나 친구들의 sleepover를 기대하고, 즐기고, 노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 엄마는 나에게, "우리 애가 아직 집 밖에서 자는 걸 두려워해. 아직 sleepover는 안될 것 같아. 아이가 준비되지 않았어. 내가 저녁에 데리러 올게."라고 하는 말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였다면, "다른 친구들은 sleepover 다 잘하고 오는데, 뭐가 무섭다고 그래? 창피하지도 않아?"라고 했을 것이다. 늘 주변 아이를 통해서 아이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엄마가 판단하는 생각의 기준은 아이 자신이었다.
아이도 내가 사회성 문제로 인해서 '친구'이야기만 하면, 싫어하고 입을 닫던 모습이, 전형적인 내향적 모습을 가진 나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이의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서 느낀 뒤로, 아이를 보는 시각이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실수를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그럴 수 있지, 다른 장점이 더 있는데 뭐." 이러면서 느긋해지니, 아이도 점점 내 눈치를 보는 대신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점의 역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외부강사가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각 반 대표로 미리 질문자를 정해서 질문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아이의 Humanity 선생님이 갑자기 아이 반으로 와서, "이따가 네가 이 반 대표로 질문을 할 수 있니?"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내향적인 아이는 "네, 물론이죠."라고 대답함과 동시에,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을 처음 보는 외부 강사에게 질문을 했다. 친구 아빠였던 다른 반의 선생님이 마이크를 전해주며 보여준 엄지 척과 미소도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물론 자신이 생각했던 질문을 앞의 친구가 해버려서, 다른 질문을 생각하느라고, 긴장 안 하는 척했지만, 답변자의 대답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는 내향적이지만, 의외로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대범한 아이였던 건데, 그걸 모르는 엄마는 작은 모습만 보고 아이를 평가했었다.
또, 한 번도 먼저 친구한테 놀자고 하지 않았던 아이가, 작년에는 처음으로 단지에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친구가 이사를 와서, 그 친구한테 먼저 놀자고 이야기도 하고, 학교 끝나고 둘이 신나게 테니스도 치다가, 코트를 예약한 어른들한테 자리를 뺏기면, 굴러다니는 축구공으로 축구도 하며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다. 아이한테 더 이상 부족한 모습을 닦달하지 않으니, 아이는 천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집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아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아이의 모습을 바꾸려 하거나, 답답해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성향을 인정해 주고, 부담스럽지 않게 기회를 주려고 하거나, 아이의 다른 장점을 칭찬해주고 있다.
작년 겨울, 아이는 처음으로 자기 주도하에 중국에서 생일파티도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매번 물어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쑥스러워하거나, 뒤로 빼는 모습이 많았는데 이제는 자신이 직접 초대해서 아이들을 리드하기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지난 나의 과거들이 많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길만 잘 닦아주고, 놔두면 클 것을 초보 엄마였던 나도 조바심을 버리지 못했었다. 나의 시각만 바꿨을 뿐인데, 덜렁이 아들이 나만의 엄친아 아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 나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생물학적인 나의 진짜 나이 대신에, 아이의 나이와 내 나이가 동일한 것 같다고 말이다. 아이가 유치원생이면, 엄마의 나이도 유치원생에 머물게 되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엄마도 초등학생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나이에 멈추게 된다. 점점 아이를 키우면서 나 자신도 그에 따라서 성장하고 있는 걸 많이 느낀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아이의 부족한 모습도 사랑하다 보면, 뾰족하고 모난 원석 상태로 태어난 아이가, 조금씩 둥글어지고 다듬어지는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겪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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