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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물은 신의 것이고, 퍼포먼스는 인간의 것입니다.

데이터 인문학

당신은 신을 믿으시나요? 저는 믿습니다.


뜬금없는 고백처럼 들리겠지만, 제 손에 들린 이 작은 기계 때문에 그 믿음은 더 확고해졌습니다.


전 세계인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 저는 이것을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바로 '데이터 기록기'입니다. 우리의 사진, 메모, 앱 사용 패턴, 심지어 건강 정보까지. 이 작은 기기는 우리 삶의 모든 궤적을 데이터 덩어리로 저장하고 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기능은 단연 '카메라'입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소위 '장비병'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포만 한 DSLR 렌즈를 장착하고 어깨에 힘을 주던 그때,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기계'를 자랑하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정작 결과물을 열어보면 영혼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공허한 이미지 파일들뿐이었죠.


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놀라웠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광학 기술과 사진을 다듬어주는 알고리즘은 제 눈을 즐겁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 태도마저 바꿔놓았습니다.


가볍고, 아름답고, 직관적입니다. 초점거리나 ISO를 맞추느라 끙끙댈 필요도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손에는 묵직한 카메라 가방 대신, 가벼운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 하나만 들려 있게 되더군요.


덕분에 저는 더 자유롭게 찍기 시작했습니다. 눈길이 머무는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찍고 있는 걸까?" 나만이 느끼는 이 찰나의 감정을 기록하는 행위는, 나를 위한 만족일까 아니면 누군가와의 공유를 위한 것일까?


그 답을 찾은 건, 갤러리에 쌓인 수천 장의 사진을 정리하던 날이었습니다. 연도별, 월별로 사진을 분류하다가 저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무의식적으로 렌즈에 담아 온 것들은, 인간이 빚어낸 화려한 구조물이 아니라 자연이 빚어낸 본연의 형태였습니다.


만리장성에 갔을 때, 저는 그 거대한 성벽보다 그 뒤로 굽이치는 웅장한 산맥에 더 오래 시선을 두었습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타임스퀘어에서도, 저는 높은 빌딩보다는 그 불빛을 배경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활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세운 빌딩과 탑, 그 거대하고 정교한 문명은 어쩌면 잠시 스쳐 지나가는 화려한 '퍼포먼스'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어주는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숨 쉬는 생명은 변하지 않는 '창조물'이었습니다.


데이터 기록기를 통해 제가 진짜 기록하고 싶었던 것. 그것은 인간의 기술이 아니라, 신의 숨결이 닿은 창조물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찍어 남기나요?

IMG_2049.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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