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는 어쩌면, 간신히 인간인 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데이터 인문학

가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거울 속에 있는 존재는 인간이냐? 아니면 옷을 차려입은 짐승이냐?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서 안경을 쓴 소년 '피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인가, 짐승인가, 아니면 야만인인가?"


이 질문에 명쾌하게 "우리는 인간이다"라고 답한 시대는 드물었습니다. 오히려 역사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야만으로 미끄러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이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인간의 종류가 몇 가지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튀어나오는 거친 말들,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물어뜯는 댓글창,

내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비겁해지는 마음들.


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안의 '야만인'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단어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야만인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하게 저항하고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자격' 같은 것 말입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안의 짐승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그 '부끄러움'이 우리를 간신히 인간으로 붙들어 매고 있는 유일한 끈이 아닐까요.


오늘도 저는 옷매무새를 다듬듯 마음을 다듬습니다.

본능대로 살고 싶은 짐승의 마음을 꾹 누르고,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인간인 척' 연기를 시작합니다.


그 가식 없는 노력이, 결국 진짜 인간을 만든다고 믿으면서요.


IMG_2801.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제대로 익어가자~"

© 2025. Digitalian. (CC BY-NC-N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에는 '담백한' 서비스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