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인문학
가끔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거울 속에 있는 존재는 인간이냐? 아니면 옷을 차려입은 짐승이냐?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에서 안경을 쓴 소년 '피기'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인가, 짐승인가, 아니면 야만인인가?"
이 질문에 명쾌하게 "우리는 인간이다"라고 답한 시대는 드물었습니다. 오히려 역사는 우리가 얼마나 쉽게 야만으로 미끄러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데이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식견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인간의 종류가 몇 가지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튀어나오는 거친 말들,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을 물어뜯는 댓글창,
내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비겁해지는 마음들.
저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안의 '야만인'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단어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 야만인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치열하게 저항하고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자격' 같은 것 말입니다.
완벽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 안의 짐승을 알아차리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그 '부끄러움'이 우리를 간신히 인간으로 붙들어 매고 있는 유일한 끈이 아닐까요.
오늘도 저는 옷매무새를 다듬듯 마음을 다듬습니다.
본능대로 살고 싶은 짐승의 마음을 꾹 누르고,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인간인 척' 연기를 시작합니다.
그 가식 없는 노력이, 결국 진짜 인간을 만든다고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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