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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데이터 인문학

손바닥 위 작은 화면에서 하루가 시작됩니다.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수십 개의 알림들. 주식 시장의 폭락, 어딘가에서 터진 전쟁, 끔찍한 범죄, 그리고 누군가의 몰락. 화려한 불빛과 24시간 꺼지지 않는 뉴스 채널들은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소식을 모르면, 당신은 생존할 수 없어. 당신은 뒤처지고 있어."



우리는 왜 불안에 소비를 할까?

우리의 뇌는 사실, 아직 원시 시대의 초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덤불 속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바람인지 사자인지 구별해야 했던 그 시절, '공포'는 생존을 위한 가장 확실한 신호였습니다.

현대 사회의 미디어는 이 오래된 본능을 너무나 영리하게 파고듭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부르더군요. 뇌는 자주 접하고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세상의 전체 모습으로 착각합니다.


미디어가 범죄를 100번 보도하면, 실제 범죄율이 줄어들고 있어도 우리는 세상의 98%가 위험으로 가득 찼다고 믿게 됩니다. 평온함은 도파민을 만들지 않지만, 공포와 분노는 뇌를 강하게 각성시킵니다. 그리고 그 각성은 클릭이 되고, 공유가 되고, 결국 누군가의 수익이 됩니다.


슬프게도, '공포'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돈이 되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나의 시간이 '산화'되는 것을 보며

문득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뉴스와 유튜브가 쏟아내는 그 많은 불안한 소식들이, 내 삶에 진짜 평안과 도움이 되었던가?"


대답은 침묵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정보를 얻는다는 명분 아래, 제 소중한 시간을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에 '산화'시키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정보를 공익이나 알 권리라고 포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의 '체류 시간'을 늘려 수익을 창출하려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의 차가운 계산이 숨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선택할래

그래서 저는 이제,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랭킹이나 자극적인 뉴스를 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것들은 저에게 더 이상 정보가 아니라 '소음'일뿐이니까요.


누군가는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포 뒤에 숨겨진 진짜 데이터, 비록 느리지만 확실하게 좋아지고 있는 세상의 변화를 보려 합니다.


부정적인 사건이 하나의 '점'이라면, 역사의 흐름은 긴 '선'입니다.

저는 점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뇌를 소진하기보다, 긴 선을 바라보며 사유의 깊이를 더하는 쪽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하루에 수십 번 숏폼(Shorts)을 넘기며 휘발되는 도파민 대신,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깊이 읽고 생각하는 시간. 누군가가 만들어낸 공포에 반응하는 수동적인 뇌가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판단하는 능동적인 뇌.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불안을 팔지만, 저는 더 이상 그것을 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소음 가득한 세상에서 제가 지키고 싶은 작지만 단단한 자존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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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Digitalian.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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