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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오류'라 쓰고, 인간은 '여백'이라 읽습니다.

데이터 인문학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 블레즈 파스칼 (Blaise Pascal) -


우리는 기다림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면 0.1초 만에 세상의 모든 지식이 쏟아집니다. 질문을 던지는 즉시 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화면이 멈췄다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섣불리 단정 짓습니다.


언제부턴가 '침묵'은 견딜 수 없는 공백, 혹은 빨리 처리해야 할 '오류'가 되어버렸습니다.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의 피로감

저는 가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답을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생각에 동의해 줄 편을 찾고 있는 걸까?"


우리는 학교에서 늘 '정답'을 찾도록 훈련받았습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여전히 명쾌한 O와 X를 갈구합니다. 그 조급함이 뇌와 마음 사이에 굵은 선을 그어버렸습니다. 논리는 차갑고 감정은 뜨겁다는, 그 이분법적인 편향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일까요. 내가 원한 답이 아니면 '틀림'으로 규정하고, 나와 다른 생각은 '적'으로 간주하며 끝내 타인을, 그리고 때로는 나 자신을 공격합니다. 답을 정해놓고 던지는 질문은 결국 내 편견을 강화하는 도돌이표가 될 뿐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봅니다. 윈도우 화면에 뜬 파란색 블루스크린은 시스템의 멈춤, 명백한 '오류'가 맞습니다. 그러나 대화 도중 흐르는 인간의 침묵은 다릅니다.


"침묵은 영원처럼 깊고, 말은 시간처럼 얕다." - 토마스 칼라일 (Thomas Carlyle) -


그 고요함은 뇌가 작동을 멈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말을, 그 이면의 떨림을 내 마음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는 가장 치열하고 따뜻한 '해석'의 시간입니다. 즉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질문을 온전히 내 안에 담아내기 위한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가 없으면 침묵(Error)하지만, 인간은 데이터가 없는 그 여백을 상상과 공감으로 채웁니다(Interpretation). 이것이야말로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의 '구조적 낭만'이 아닐까요.


빠르게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명쾌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침묵을 '무시'가 아닌 '깊어짐'으로 바라봐 줄 때, 비로소 우리는 '정답을 맞히는 기계'가 아니라 '의미를 빚어내는 인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해 봅니다. 그것은 오류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침묵의 행간을 읽어내는 다정한 기다림입니다.


IMG_2858.JPG © 2001-2025 ROYLIM | www.roylim.kr '기다려야 먹는다, 아님 정크푸드만?'

© 2025. Digitalian.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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