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길들이
가끔 그런 뉴스들을 접합니다. GPU 수천만 장,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백업, 인간의 뇌를 압도하는 AI의 기억 용량... 이런 말들을 들으면 마치 우리가 거대한 파도 앞에 선 조약돌처럼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술은 자꾸만 우리에게 "너희는 이제 끝났다"라고 겁을 주는 것만 같습니다.
저는 조용히 펜을 들어 그 공포의 실체를 짚어봅니다.
물리적인 저장 능력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AI를 이길 수 없습니다. 아니, 이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AI에게 기억은 꺼내어 쓰기 위한 재료이자 데이터의 조각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 '기억'이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그날의 공기, 내 마음의 방향에 따라 모양을 바꾸며 삶이라는 '서사(Narrative)'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AI는 하루 종일 벽돌(데이터)을 완벽하게 쌓고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벽돌로 어떤 집을 지을지, 그 집에서 누구와 웃고 울지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AI의 기억 능력과 인간의 기억 능력을 동일 선상에 놓고 경쟁을 부추기는 공포 마케팅을 보면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것을 '도구'가 아닌 '위협'으로 먼저 받아들일까요? 2025년, 우리는 더 이상 맹수에게 쫓기는 원시인이 아닌데도,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재미있는 건, 인류를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에 대해서는 AI만큼 호들갑스럽게 공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실체 없는 정보의 비대칭 속에서 누군가가 의도한 두려움에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아마도 인공지능의 소비성과 핵무기의 독점성 때문일 것 같네요)
생존을 위해 코딩을 배우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AI 활용법을 배우라는 목소리가 우후죽순 들려옵니다. 물론 배움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흔히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부르는 거창한 말도, 사실 껍질을 벗겨보면 우리가 어릴 적 배웠던 '도덕'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이 올바르게 작동하게 만드는 힘, 그 '도덕'의 트리거(Trigger)는 결국 외로움, 두려움, 즐거움, 슬픔을 느낄 줄 않는 '감정'에서 나옵니다.
AI가 감정을 흉내 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학습된 패턴일 뿐, 진짜 떨림은 아닙니다. 그러니 AI에게 윤리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우리 인간이 합의하고, 감시하고,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진짜 과제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우리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 위에서 더 넓게 확장될 것이라고요.
벽돌을 나르는 일은 기계에게 맡기고, 우리는 건축가가 되어 더 멋진 집을 구상하면 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음과 검증되지 않은 공포가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내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따뜻한 머리로 기술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AI는 '불변의 출력'일 뿐이므로, 창조적 망각이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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