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혼소송 반소 첫 기일

참 쉬운 게 하나도 없다.

by 은연주


오늘의 위로


오늘로 2주 연속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4시간씩 근무 중이다. 주말에는 특근 달지도 못한 채 일하고 매일 퇴근할 때 노트북을 집으로 들고 온다. 나 하나 없어도 전혀 티 안 나는 곳인데 왜 이리도 일은 쌓여있는지. 심지어 나만 일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일을 많이 하는 거라서 더 큰 문제다.


오늘은 재판 기일이었다. 기다려줄 만큼 기다렸고 참을 만큼 참았지만 더 이상 내 명예를 실추시키고 엄마아빠를 아프게 만드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내가 반소를 걸었고 지겨운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픈 사람과 억지로 싸운다는 건 진심으로 무의미한 전쟁이다.


주말에는 폭싹 속았수다를 몰아보며 현실도피를 하고 드라마를 핑계 삼아 펑펑 울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악착스러운 금명이가 어쩐지 나 같아 보였다. 이깟 더러운 상황에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내가 덩달아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2주나 일에 시달리는 덕분에 살림도 조촐한 혼자 사는 집에 집안일이 쌓여있다. 옷은 여기저기 널려있고 재활용 분리수거는 손도 못 대는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매일 조금 열어둔 창 틈으로 파도를 느끼며 잠든다. 밤바다의 짠내가 내 눈물을 몰래 숨겨준지 오래라서 그런가. 이젠 우울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우울증 약 없이도 버틸 만 해졌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날 두고 수군대던 남 말하기 좋아하는 전 직장 동료들 앞에 당당했다. 어차피 나는 내 인생만 잘 살기도 바빠서.


바다는 이만큼이나 넓고 나는 아주 작은 해마 내지는 아기 해파리.

그렇게 생각하면 나를 괴롭게 만드는 홍길동이나 야근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괴로운 게 아니라 괴로워 보이는 것일 뿐.


25년의 상반기가 저물어간다.

상대방 측에서 기일을 한 번 더 잡아달라고 요청해서 다음 기일은 7월이다.

세월아~

네월아~~

대체 얼마나 더 짱짱한 인생이 펼쳐지려고 이러나?!


그래도 잘 살아보려는 의지만 득실득실 넘치는

나는 우리 집 금명이고

내가 바로 우리 엄마아빠의 얼굴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