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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경기장에서 배운 인생 수업

by 오박사

한때 이런 말이 있었다. 남자들이 모이면 축구 얘기, 군대 얘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만 한다고. 그땐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나 역시 축구를 무척 좋아했다. 보는 것보다는 직접 뛰는 걸 더 즐겼다. 경찰이 된 뒤에도 축구 동호회에 들었고, 동호회가 사라진 뒤에는 젊은 직원들과 퇴근 후 풋살을 하곤 했다.


우리 아파트 옆 단지에 국민학교 동창이 있었는데, 그는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한번 같이 나가보자”고 권했고, 나는 주저 없이 승낙했다. 오랜 시간 축구를 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낯선 모임에서도 환영받을 거라는 기대에 설레기도 했다.


그 축구회는 ‘대천 축구회’라는 이름으로, 부산 화명동에 있는 대천리 중학교 운동장에서 매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활동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이미 10여 명이 몸을 풀고 있었고, 회원은 약 46명, 보통 25명 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낯설었지만 다들 반갑게 맞아주어 금세 어울릴 수 있었다.


문제는 첫 경기였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뛰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숨이 막혀 쓰러질 뻔했다. 무엇보다 조기축구 특유의 체계적인 패스가 낯설었다. 익숙지 않은 전술에 당황했고, 실수를 거듭하며 결국 ‘축알못’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당시 내 몸무게는 86kg, 인생 최대치를 찍고 있었기에 몸은 더 무거웠다.


축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격을 하고 싶어 한다. 골 맛만큼 짜릿한 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수비를 맡았다. 수비라고 해서 쉬운 건 아니었다. 상대 공격수가 빠르면 공간을 내주기 쉽고, 공을 잃는 순간 실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공을 받는 게 두려울 정도였고, 몇 번의 실수로 욕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축구의 매력은 골맛에만 있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공이 발에 붙기 시작했고, 수비에도 점점 익숙해졌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자 축구는 더 재미있어졌다. 매번 경기에 나서고 싶어 어필했고, 어떤 날은 하루에 다섯 경기까지 뛰기도 했다. 무작정 차던 발길질이 점점 전술 속 움직임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짜릿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에 빠져드는 나쁜 습관이 문제였다. 무조건 오래, 많이 해야 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었다. 결국 내 발목을 잡은 건 몸무게였다. 무릎이 버티지 못했고, 1년쯤 지나자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고, 무릎을 굽히는 건 불가능했다. 보호대를 차고 억지로 더 뛰었지만 결국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MRI 결과는 양쪽 무릎 연골 파열. 수술이 필요했다.


결국 2019년, 축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양쪽 무릎 수술을 받고 6개월간 공을 잡을 수 없었다. 운동이 건강에 좋다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축구를 한다. 오히려 토요일 조기축구회까지 새로 가입했다. 다만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고 조절하며 즐긴다. 축구는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 배우는 즐거움, 체계적인 움직임의 매력, 성장의 기쁨, 그리고 욕심이 부를 대가까지.


돌아보면 모든 경험에는 배울 게 있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살도 빠지고 실력도 늘었다. 물론 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운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뛰며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축구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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